2023년 2월 14일 화요일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이다: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 리뷰

양근애 (r......@hanmail.net)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렸어요. ‘미친존재감’이라는 센스있는 이름을 붙인 기획자는 누굴까 기대했고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하루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다섯 명 남짓이라고 했을 때는 살짝 긴장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게도 기회가 있었어요. 그날 저는 동행인과 대흥역에서 내려 저녁을 먹고 토정로라고 적힌 골목을 걸어 어느 주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화요일 저녁이었고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골목의 적요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그때 누군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극장이나 문화시설, 거리처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공연을 보러 가는 일도 처음이었습니다. 어느새 대문에 붙은 ‘ㅁㅊㅈ’이라는 초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어느 평범한 주택 앞에 도착했어요. 

흰색 페인트가 드문드문 벗겨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친집은 끝이 없어요. 미친집은 완벽하지 않아요. 미친건 특별하지 않아요. 미친집은 독특하지 않아요. 미친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미쳤다”이거 삶이거든요.”라는 손글씨가 보였어요. 어쩌면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라는 공연에 대한 설명은 이 글귀로 충분한지도 모르겠어요. 사회는 누군가를 ‘미쳤다’고 하지만 정신장애인에게 미쳤다는 건 극복할 수도, 완전히 치료될 수도 없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있는 몇 개의 방에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면이 전환되고 시점이 바뀌듯,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면서 정신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었어요. 첫 번째 방에서는 왈왈님의 노래 두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교회를 좋아하고 하루에 이만 보씩 걷는 왈왈님의 이야기 속에는 투쟁도 있고 편지도 있고 병원도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식물이 많았고 왈왈님이 모아둔 편지도 많았습니다. 거기엔 제가 미처 모르는 시간이 들어있었겠지요. 

연화님의 방에서는 작은 공연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오다 노부나가와 알렉산드라와 카산드라를 말하는 연화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이 아주 많았어요. 책을 쌓아 만든 그림자와 붉은 조명 아래서 우리는 차를 나누어 마셨습니다. 고유한 선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연화님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십 대였고 연화님의 이야기 속에는 저 먼 나라의 전설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고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할 때 도리어 달아나는 모양이 어지럽게 떠올랐습니다. 

연화님은 카산드라를 통해 미쳤다는 말을 전유했습니다. 확실하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예언을 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불린 카산드라. 연화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떠들었어도 아무도 안 믿잖아.”라는 일갈로 끝을 맺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있는 그대로 발화되는 순간 사회는 그것을 못 들은 척하거나 없는 일로 만들거나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습니다. 2021년 공연한 연극 <우리는 미쳤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이런 저를 부르는 호칭은 참 많습니다. 사이코, 정신병자, 미친새끼, 또라이, 정신질환자, 사회공포증, 엉망진창, 주의력결핍장애, 범불안장애, 분노조절장애……. 저는 유소한을 혐오합니다. 저는 유소한을 사랑합니다. 혐오했다가 사랑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합니다. 이런 제가 매드 프라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진요. 저는 계속 외치겠습니다. (쇳소리가 나도록 크게) “우리는 미쳤다.”*

실은 정신장애라는 말을 쓰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당사자의 ‘미쳤다’는 발화가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미친존재감의 지난 공연에 관한 정보와 몇 개의 논문을 찾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은 당사자의 삶을 배제한 의료적인 관점이며, 매드(Mad)는 퀴어(Queer)나 크립(Crip)처럼 차별과 낙인을 위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용어를 전유하는 전복적인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는 매드(Mad) 정체성을 드러내는 연극이고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의 다양한 경험을 정신의학의 담론에 밀어 넣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하나의 운동이기도 하겠지요. 

거실로 나와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 잠깐의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색함도 조금 가신 터라 두리번거리며 집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친척 집에 갔던 일이 떠올랐어요.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던 나무 계단을 통해 이층 다락방으로 갈 수 있었던 집이었고 어린아이였던 나와 사촌들은 그 계단을 올라가 어른들과 상관없이 우리끼리 속닥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잊은 줄 알았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일들은 사라지지 않고 나라는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있는 것만 같아요. 그 얼룩이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걸 알 것 같습니다.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이제 세상에 없는 도마라는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도마가 고유한 선님의 친구 수아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 놀랐어요.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지만 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황망하고 슬펐거든요. 고유한 선님이 준비한 이야기 속에서 도마의 노래를 듣고 또 부르는 동안 생각지 못한 어떤 연결이 틈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틈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목소리로만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의 생을 조금 엿본 느낌도 들었어요. 고유한 선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이들을 감지하는 일을 환시나 환청, 망상과 같은 양성증상이라고 치부하고 그것을 치료의 대상으로 다루는 일은 얼마나 간단한지요.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를 통해 증상 자체보다 그것을 가짜라고 하거나 떨쳐내야 할 일로 취급하는 일이 더 속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유한 님의 등을 어루만지던 온기는 진짜였을 테니까요.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가까운 이의 집에 방문했을 때처럼 적당한 침묵이 드나들 거리가 있어 편안했어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집 안에 놓인 고유한 선님이 그린 그림들이 우리는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었어요. 왈왈님과 연화님의 브이로그도 보았습니다. 미친집으로의 초대는 완벽하지도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우리가 만난 것은 스스로를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매드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의 일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병원에 가고 일자리를 구하고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고 학교에 가고 그림을 그리는 하루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특정 질환이나 장애 여부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기도 하고 동시에 혐오하기도 하는 자기만의 고유성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이 오롯했습니다. 

사실 저는 장애를 잘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장애예술을 자주 만나고 장애학 관련 책을 읽고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장애에 관해 말하는 건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건 그저 작은 이유였을 거예요. 저는 글쓰기라는 것을 한 이후로 줄곧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이야기에 대해 말해왔으니까요. 그러나 장애연극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두렵고 괴로웠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겁이 많은 저는 어떤 날은 내가 쓴 어떤 문장이 차별과 배제의 문법을 반복하거나 그것을 묵인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또 어떤 날은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야 깨달은 무지를 자랑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 그렇다고 말하는 일이 장애라는 사실을 도리어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게 만들까봐 무서웠습니다. 급기야 모든 글쓰기가 다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글을 쓴다는 일이 사실은 내가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고쳐 쓰는 이 글이 어떻게 당도할지도 겁이 납니다. 그렇지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날 제가 느낀 환대가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꺼내는 용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날 초대한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이 마주 앉아 어색함과 공감과 다정함을 나누는 동안 저는 장애나 질병, 질환, 통증, 아픔 같은 말들이 일상에 내려앉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그것은 한편으로 저에게 이미 있거나 도래할 그 말들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과일과 시나몬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뱅쇼와 따듯한 차, 비건 쿠키와 케익과 감자를 나누어 먹으며 이웃이라는 낱말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웃이라고 해도 가족이라고 해도 아주 친한 친구라고 해도 당사자의 고통과 곤혹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옆에 앉아서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지도 모르겠어요. 때로 마음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라 무심한 동행으로 전달되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조심해서 외롭게 하기보다 민폐를 끼치더라도 묻고 듣고 답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두 조금씩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골목길을 돌아 나와 달라진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서울이 점점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쾌적하지도 편리하지도 않은, 사람이 살다간 흔적으로 얼룩진 소담한 주택들이 아직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세상엔 참 많은 집이 있고 집마다 다 다른 사연을 품고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 다름이 이 세계를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주는 거겠지요. 

미친집에 다녀왔습니다. 아름답지도 신기하지도 이상하지도 무섭지도 않은 진짜가 있었습니다. 

*송승연,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가 주도하는 연극 참여자들의 경험 및 인식에 관한 연구: 미친존재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비판사회정책』 제75호,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건강정책학회, 2022. 279쪽에서 재인용.

사진: 김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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