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4일 수요일

극단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임승태 

김현탁에게는 확고한 자기 세계가 있다. 그게 때론 너무 확고해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긴장을 풀고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음이 이내 분명히 드러난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은 비둘기들과 더불어 디지털 세계를 여행한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디지털 세계가 무대라는 오프라인 위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된다. 물론 중심에는 배우의 몸이 있다. 이번엔 심지어 음악과 빛까지도 배우의 몸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소리와 빛이 무릎으로 전달된다. 배우들이 쉼없이 런지를 할 때 내 무릎도 함께 시려 온다. 이전 작업에서 사용했던 요소들이 더러 반복된다. 어떤 이는 자기복제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이) 편하려고 반복하는 것은 결코 아닐 테니 시그니처라고 해두자. 
극장에 가기 전에 <걸리버 여행기>를 굳이 다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면 도리어 실망할지도. 공연 소개글도 너무 의지하지 않는 게 좋다. 성북동비둘기의 공연에 익숙하지 않으면 오히려 헷갈릴 수 있다. 차라리 90년대 말 '걸리버'라는 휴대폰 브랜드가 있었다는 걸 알고 가는 게 낫겠다.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 김현탁은 이 카피 때문에 일부러 걸리버 폰을 썼을 것 같다.

2022년 12월 9일~18일, 성수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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