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괄괄×괄괄 인터뷰]는 극작가 동인 ‘괄호’ 멤버들 간의 내부 인터뷰를 기록한 시리즈입니다. ①편에는 김진희 작가와 이소연 작가의 이야기를, ②편에는 도은 작가와 신효진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의 기획 및 진행은 ‘괄호’의 드라마투르그 김민조가 맡았습니다.
<괄괄괄괄>을 올리기까지
민조: 이번 ‘괄호’ 창단 공연에 도은 작가님은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전화걸기 위해서는>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고, 효진 작가님은 <송>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죠. 저희가 처음에 창단 공연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다가 글쓰기 규칙을 정해서 네 개의 작품을 하나의 공연으로 엮어내자는 결론을 냈고요. 그 이후에 작가님들이 글쓰기 규칙에 맞는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낼 것인지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 대해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도은: 제가 가진 현재진행형의 고민과 엮어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극작가가 나오는 작품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극작가인 나의 고민과 맞물려 있는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원래는 남자가 나오는 연극을 쓰려 했어요. 제가 전에 쓴 작품들 중에는 남자가 죽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남혐 작가 아니면 메갈이다’ 라는 소리까지 들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죽임을 당한 남자가 작가를 찾아오는 얘기를 쓸까 했는데, 쓰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안 써져요. 남성 인물이 찾아와서 작가에게 말을 건다면 결국에는 그걸 쓰는 제가 그 남성 인물의 말을 듣고 싶거나 그 사람이 무슨 논리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야 하는데…
민조: 궁금하지가 않으셨군요. (모두 웃음)
도은: 네, 쥐어짜도 나오지가 않고, 관객들도 보면서 괴로울 거라는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더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남성 인물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 남자 인물을 죽이는 여성 인물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저의 본질적인 고민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여성 인물 두 명이 나오는 작품으로 안착된 것 같아요.
효진: 저는 2월에 올렸던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 공연에서 제가 극작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했거든요. (웃음) 억울함도 표시를 했고, 소외당한다는 얘기도 했고, 제가 당한 실제 사례들도 다 보여줬고, 어쩌다 희곡을 쓰게 됐는지도 얘기했고요.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아, 극작가 얘기 또 해야 돼?’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데…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등장인물을 만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어렵지 않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극작가의 이야기가 극작가에만 머물지 않고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소망도 있었고요.
그러기 위해서 ‘친구’라는 친밀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불러내는 방식을 떠올리게 됐어요. 예전에는 제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 것만 글감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해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써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제게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를 극작가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만나 이해해보려 하는 이야기를 쓰면 좀 더 쉽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조: 효진님이 맨 처음에 가져오신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잖아요. 정신분석의와 내담자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인물 관계였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이야기를 교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효진: 그 이야기도 골자는 결국 ‘이해해보려’ 하는 것이었어요. 그와 함께 등장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대상화가 아닐까 하는 저의 고민이 들어갔던 작품이었는데, 왜 교체하게 됐냐면 일단 글에 너무 허세가 많았고 (웃음) 승모근에 힘주고 쓴 것 같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있었거든요. 보다 친밀하고 확장성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송>으로 전환하게 된 것 같아요.
민조: 확실히 관객들 중에서도 <송>을 보며 자신의 친구나 주변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도은님의 <프란시스>를 보며 자신이 동경하거나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것 같고요.
극작가 동인 괄호,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2020)
극작가가 인물을 만나는 과정
민조: 저는 개인적으로 극작가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했거든요. 인물의 이름이 어느 순간 벼락처럼 오는 것인지, 사흘밤낮을 고민해서 지어내는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효진님이 쓰신 <밤에 먹는 무화과>의 주인공 ‘윤숙’의 경우에도 작품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어떻게 그런 이름을 지으시는 건가요.
효진: 이름 지을 때가 항상 머리가 터지더라고요. 저는 이름보다는 이야기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그 속에서 의미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편이에요. <밤에 먹는 무화과>의 경우에도 주인공 ‘윤숙’을 제외하면 모두 이름이 없는 인물로 채워져 있거든요. 지나가는 인물들이 특별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거죠.
도은: 저도 이야기가 먼저 나오긴 하는데, 모든 인물의 이름이 특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있어요. 아니면 아예 익명성이 확 느껴지게 짓거나.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떤 톤으로 갈 지 빨리 결정되는 편인 것 같아요. 톤이 먼저 결정되면 그걸 의식하면서 의미와 맞는 인물의 이름을 찾아가게 돼요.
민조: 도은님의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에 나오는 ‘모’라는 주인공 이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를 상기시키는 이름인데 17세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고요.
도은: 그 작품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 이름이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어요. 작품을 구상할 때 이름이 한 글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라는 인물은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순간들도 있는데, 익숙한 모습의 엄마는 또 아닌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 이름이 빨리 떠오른 것 같아요.
효진: 가끔 인물이 먼저 오고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 이런 인물을 써야겠다’, ‘얘 이름은 이런 느낌이겠다’가 먼저 오고, 그 인물을 어떤 이야기 속에 넣을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죠.
민조: 인물의 캐릭터성을 어떻게 구축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타인의 말투나 문체상의 특징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인물을 만드실 때 실제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가 반영되는 경우도 있나요?
도은: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꽂히는 편이에요. 현실에서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집에 가서는 계속 생각해보는 거죠.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거나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효진: 저는 사람을 나노 단위로 잘 보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덕질을 하는 스타일인데, 그 사람만의 귀여운 순간들이 있어요. 그 순간들을 잘 기억하려 노력하고 그게 왜 귀여웠는지 생각해보는 편이에요. 도은님이 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꽂힌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래요. 어딜 갈 때도 귀가 항상 열려 있어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귀에 잘 들어오고,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항상 궁금해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저는 택시기사님께도 말을 많이 거는데요, 그분들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TMI를 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아, 인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런 사람이 희곡에 나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궁금해지고요. 그런데 오히려 주변 인물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인데, 거기에 나오는 특이한 심리나 철학 사상 같은 것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그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볼 때도 있고요.
그간의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민조: 작가님들이 그간에 쓰신 작품들을 읽어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인물형이나 모티브가 있더라고요. 효진님의 경우에는 역시 인간이 아닌 존재들, ‘비인간’으로 통칭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탈피>에서도 ‘뱀’이 아주 멋있게 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2월에 하셨던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공연에서도 이 ‘뱀’이라는 인물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연출이 모습이 나왔던 것 같고요. 다른 한편으로 이번 <송>은 내 곁을 떠난 친구를 다시 불러내는 이야기이고, <밤에 먹는 무화과>도 죽음에 가까이 있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인데요. 죽음이라는 테마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신 건가요?
효진: 음… 중2병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건가. (웃음) 우리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끝’에 대한 직감을 갖고 있잖아요. 죽음이 커 보이지만, 실은 내가 싸우고 영영 보지 않게 되는 친구도 제게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관계의 끝이랄까요? 그게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고유한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런 게 없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해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영원하다면 기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특히 희곡을 쓰는 행위에 중요한 것은 순간을 잡아두는 것이고, 연극 자체도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가는 이야기이죠. 그런 게 죽음의 이미지와 잘 연결이 되는 듯 해요. 그렇지만 죽음을 단지 두려운 것으로만 묘사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있고요.
민조: 효진님이 ‘사라짐’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도은님 작품에서도 유사한 테마가 보이는 것 같아요. <사라져, 사라지지마>에 나오는 사라진 아이, <냉장고로 들어간 아이>에 나오는 사라진 여자들이 그렇죠. 도은님에게는 사라짐에 대한 테마가 어떤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도은: 저는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지’가 궁금해요. 누구에게나 자기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희곡에서는 그 사람들을 무대 위에 불러낼 수 있기 때문에 자꾸 불러내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불러낸다면 어떻게 불러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가 항상 궁금해요.
민조: <프란시스>의 경우 작품 뒷부분에 작가와 인물이 ‘그 여자는 어떤 여자여야 하나’에 대한 대화를 나누잖아요. 최종고에서 “여자는 그 여자가 그립다. / 왜 그립지? / 떠났으니까.” 라는 대사로 확정되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좀 먹먹한 느낌이 있었데, 방금 해주신 말씀을 듣고 보니 어떻게 보면 도은님의 오래된 테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작가님들 각각의 연습실을 부엉이처럼 날아다니다 보면 기분이 이상할 때가 있는데요.
효진: 부엉이 잘 어울려요. (웃음)
민조: 뭐라고요? (웃음) <프란시스>에 ‘두 여자가 아주 친했는데 멀어졌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게 <송>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진희님과 소연님 작품 도 대사를 통해 서로 링크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님들이 공간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도은님의 경우 전작들을 보면 일상적인 공간들이 나오는 것 같고 인물들도 구어체의 통통 튀는 대사들을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무대지시문들을 보면 오브제만 몇 개 놓여 있는 빈 무대를 쓰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전환이 자유로운 세팅을 선호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도은: 아무것도 없는데, 약속을 해서 공간이 성립되는 순간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진짜 같은 세트를 만들기 보다는 최대한 무대를 상상으로 채워넣을 수 있기를 바라곤 해요. 그리고 제가 희곡을 쓰다 보면 공간 자체가 많아지더라고요. 그 공간들을 실질적으로 구현하지 않고 오브제만 딱딱 넣어놓으면 무대화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낼 거 아니에요. 저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민조: 그래서 도은님 희곡을 읽으면 기본적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공간이 시원하게 열려 있는 느낌이고, <프란시스>에서 그런 점이 트램펄린의 활용으로 집약되지 않았나… (웃음) 저는 효진님의 <밤에 먹는 무화과>를 희곡집 『여자는 울지 않는다』(제철소, 2019)에서 처음으로 읽었는데요, 그때 ‘호텔 뤽상부르’라는 공간의 강렬하고 구체적인 질감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이국적인 느낌도 많이 받았는데, <탈피>의 경우에도 배경이 파충류 동물원이잖아요. 주제적인 면과 공간 활용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효진: 제가 비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데, 저는 최근에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구체적인 공간을 소환하려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밤에 먹는 무화과>의 경우 ‘이윤숙’이라는 인물이 곧 호텔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썼어요. 저는 어느 순간 무대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타협적으로 쓰는 게 싫어졌어요. 예를 들어 호텔이나 동물원 공간에 대한 지시문을 구체적으로 쓰면 쓸수록 제 안에서도 ‘이게 될까?’, ‘이걸 누가 구현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럴 때 타협을 좀 안 해봐야겠다, 연극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읽을 때 재미가 있고 이 이야기에 의미를 주는 공간이라면 쓰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민조; 학교에서 맨날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는 글이라고 가르치죠. 저도 예전에는 연극을 위한 스크립트로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새는 희곡과 무대 사이의 긴장과 간극이 있는 작품이 더 즐겁게 읽힐 때가 있어요.
‘괄호’다운 프로덕션에 대한 이야기
민조: 두 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는 <괄괄괄괄> 프로덕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이번 프로덕션이 연출가를 거치지 않고 작가님들이 배우님들과 직접 접촉해서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형태잖아요. 이런 형태의 프로덕션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효진: 저는 되게 좋았어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요. 물론 연출적인 테크닉이 부족하고, 배우의 언어를 잘 모르다보니 기술적으로 조금 딸리는 면이 있긴 했죠. 그렇지만 제 텍스트를 육화시키는 과정에 배우님들과 함께 참여하다 보니 인물을 이해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를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대부분 연출님들이 해석해서 전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2인극의 형식이라서 더 그런 측면이 있겠지만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이번 <괄괄괄괄>의 콘셉트도 작가가 인물을 만난다는 것인데, 뭔가 메타의 메타를 경험했달까… (웃음)
도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괄괄괄괄>이 연출 위주의 작업 환경에 대한 항의 같은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요. (웃음) 연출의 역할을 겸하는 것인지, 그냥 작가로서 과정 안에 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도 내가 어떤 상태로 들어와 있는 걸까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작/연출을 해본 적은 없고, 이번에는 연출도 아니고 작가긴 한데 완전히 작가만 하는 건 아닌… 중간적인 무언가였던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이 많이 반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아무래도 저희가 극작가 동인이라는 것을 배우님들이 의식하셔서 그런지 대사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효진: 맞아요.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려고 하세요. 그런 걸로 뭐라고 안 하는데 틀리면 괜히 눈치 보시고… (모두 웃음)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편하게 하시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대사 순서를 바꿔버리시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또 이 대본을 인터넷에 올릴 거다, 그러니 조금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웃음)
민조: 말이 나온 김에 연습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좀 더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곤란했던 순간, 재미있던 순간, 신기했던 순간 등등이 있으셨나요?
도은: 저는 연습실에 오는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할지 알고 오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일일계획표를 세우고 첫 연습 때 전부 공유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프란시스> 팀은 인원이 적고 작가랑 배우들이랑 나이대도 전부 비슷해요. 그러다보니 수다를 정말 많이 떨게 되는 거예요. 다섯 시간 연습이면 두 시간 수다를 떨고 세 시간 바짝 하자, 는 식이 되기도 하고요. 작품과 아무 상관없는 연애 이야기를 꽃피우기도 하고. 그게 가능한 환경이 신기했어요.
효진: 저희도 그래요. 네 시간 연습인데 한 시간 떠들고 한 시간 근황토크하고… (웃음) 보통 연출 역할을 맡은 사람이 조바심을 내게 되잖아요. 저는 연출님들이 공연이 임박해오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하호호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도 제가 되게 태평하더라고요? 저는 도은님처럼 계획을 짜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오늘은 뭐 할까요?’ 하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그러니까 배우님들이 오히려 불안해서 추가 연습을 하자고 하시고, 저는 ‘저희 다 됐는데 왜 그러세요’ 그러고. (웃음) 저도 동년배 세 명이서 연습을 하니까 너무 돈독해지고 좋더라고요. <송>은 90년대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이라 그 시절 얘기로 또 꽃피우고, 그런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아, 에피소드라면 ‘햄스터 난입 사건’도 있었잖아요?
민조: 햄스터 난입 사건*은 제가 각주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웃음) 이번 창단 공연은 네 명의 동인이 독립적인 단막극을 연달아서 올린다는 특징도 갖고 있잖아요. ‘괄호’ 동인의 이름으로 처음 시도해본 가능성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어떠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효진: 이번 공연도 매우 의미 깊고 좋은 시도였지만, 개별적으로 연습이 돌아가다 보니 극작가들끼리 뭔가를 한다는 느낌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극작가 네 명이 복작복작 벌이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 스터디도 하고 싶고요.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걸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스터디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바람이에요. 두 번째 바람은 극작가로서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희 공연 풀네임이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잖아요. 정말 그 제목에 어울리는 모색을 해보고 싶은 거죠. 세 번째로는 동인들이 서로의 희곡을 봐주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내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괄호’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지지해주는 동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도은: 지원 사업 되고 나서 저희들이 같이 희곡을 쓰기 시작했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이 흔치 않거든요. 내 희곡이 언제 공연될지 모르는 상태로 쓰지, 공연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쓴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동인들이 동시에 희곡을 쓰기 시작하고 회의 자리에 모여서 그 희곡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감각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덕션 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좋았고, 연출이나 배우의 피드백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피드백을 준다는 것도 좋았어요. 그게 초반에 작품을 다듬을 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팀 내에서 꾸준히 잘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저는 공동창작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처럼 여성 극작가들이 모인 ‘글과 무대’ 팀의 공연을 봤는데, 그 공연은 아마도 작가들이 함께 스토리라인을 짜고 인물을 만든 것 같았어요. 저희도 그렇게 하나의 주요 스토리를 만들고 동인들이 공동 작업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힘든 작업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과정 안에서 극작가가 뭘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너무 소외되어 있다는 결론 말고, 앞으로 우리가 과정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효진: ‘괄호’ 희곡집도 내고 싶어요. 저는 제 희곡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지가 항상 어려웠거든요. 공연화되지 않더라도 희곡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뭔가를 해보면 좋겠어요. 희곡만 있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해서 희곡의 장면을 삽화로 넣어볼 수도 있고요. 좀 더 가독성 있고 독자가 상상을 하기 편한 희곡집을 만들면 누군가에게는 읽히지 않을까요?
민조: 돌이켜보면 저희가 창단하자마자 공연을 올리는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데요, 오히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극작가 중심 프로덕션을 굴려보는 소중한 경험을 얻은 것 같기도 해요. 그 경험을 가지고 다시 ‘괄호’로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음 스텝을 구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
* 수유동 연습실 햄스터 난입 사건: 2020년 5월 22일 수유동에 소재한 쿵짝프로젝트 연습실에 햄스터 한 마리가 난입한 사건. 1층에서 연습실 현관으로 난데없이 떨어진 햄스터를 작가 도은이 최초 목격하였고, 곧장 연습실 난입을 감행한 햄스터를 드라마투르그 김민조 등이 저지하였다. 햄스터는 쿵짝프로젝트 연습실에서 1박 2일을 보낸 뒤 입양 의사를 밝혀온 연극인의 품에 안겨 유유히 사라졌다.
도은
2018 <사라져, 사라지지마>
2019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
2019 <아무튼 살아남기>
2019 <아빠 안영호 죽이기>
2020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전화걸기 위해서는>
신효진
2018 <아웃스포큰>
2018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2019 <탈피>
2019 <디디의 우산>
2019 <밤에 먹는 무화과>
2020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2020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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