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연출 없이 연극하기”에 대한
丙 소사이어티의 관찰
@ 홍대 옥탑 작업실
프로젝트 공공연희의 연습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한다면?
조촐한 규모였다. 작은 방에 4명이 모여 앉았다.- 우리는 동시 연출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나의 텍스트와 세 명의 다른 연출.
- 다만 셋 다 만족할 수 있는 텍스트여야만 한다. 지금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찾기까지 어마어마한 과정을 거쳐 왔다. (일수 연출 멋지게 시를 낭송) 결국 우리의 합의는 바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 라면’ 이다.
- 동시연출을 위한다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최소한의 텍스트만 가져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라면 뒷면의 기재된 조리법, 그만큼의 텍스트만 취하고 싶었다. 그 텍스트와 이 시 전반에 깔린 정서를 합쳐보려 한다.
- 우리가 하려는 동시연출이란 그 누구도 방관자가 되지 않는 그런 환경인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오히려 더 방관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 슬프다.
- 동등한 연출의 위치에서 함께 작업하며 다른 이의 태도를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무척 좋았으나, 책임감이 1/n 이 된다는 것. 부담을 덜 수는 있지만 그만큼 작품에서 한 걸음 떨어져 버리는 것이 딜레마였다.
- 이번 화학작용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취지지만, 관객들이라 함은 결과에 무척 익숙한 사람들이라 (다른 팀들 또한 알게 모르게 결론 혹은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 준비를 하는 데 쉽지 않다.
오늘 본 것을 丙 소사이어티의 언어로 옮겨온다면?
일수 연출님이 명언을 남겼다.나는 철학이 하늘을 향해 뻗는 가지라면 예술은 그 가지에 달리는 열매라고 생각한다.
이 열매를 위해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누군가는 연출 누군가는 배우 누군가는 작가가 되겠지. 또 이 중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기생하기도, 혹은 강요하기도 하겠지.
동시연출로 완성된 공연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은 알지만
지켜본다는 것은 무척 기대되는 일이다.
이들의 과정에 하루 정도 개입해보았다는 게 즐거울 따름이다.
* * *
극단 Y의 실험,
“가부장 없이 연극하기”에 대한
프로젝트 공공연희의 관찰
@ 동숭아트센터
▷ 극단 Y × 프로젝트 공공연희 연습현장 스케치 영상
극단 Y의 연습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한다면?
과정에 집중한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결과를 평가하고 그 가치를 재화로 환산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결국 좋은 결과물을 토해 내었을 때라야 만이 자신을 평가하는데 있어 부끄럽지 않았다.
정말 그러한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자리였다.
창작자로서 늘 염려하는 바이다. 나 역시 과정에 집중하여 과정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을 끊임없이 유예했다.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과 정성이었다.
나의 작업은 종종 사람을 다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번 극단 Y의 연습 공개에 참여하면서 ‘과정에 집중한다.’는 태도로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과정이 아름다우려면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되뇔 수 있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사치를 선물 받았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을, 관계를, 사건과 사고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의와 불화. 강제와 강요. 미심쩍음과 침묵. 누군가의 희생. 억압과 묵과. 무언의 합의와 배제.
내가 익숙해져 있던 것들에 대한 딴지에 기꺼이 참여했다. 곰곰하게 고려해야할 이슈를 선물받았다.
유난하고 사소한, 섬세하고 예리한 발언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발견한다. 우리 팀 스스로를 관찰해야 할 소실점의 좌표를 다소 확인한다.
오늘 본 것을 프로젝트 공공연희의 언어로 옮겨온다면?
팀 내에 갈등이 발생한다면,
대리인을 당사자 외부에서 선정하여,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 권리장전 中
감동적인 문구였다.
갈등에 대해 진지하게,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접근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자성을 하게 하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꼭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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