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렉티브 뒹굴의 실험,
“PC함 신경 끄고 연극하기”에 대한
극단 Y의 관찰
@ 불광역 청년청
▷ 콜렉티브 뒹굴 × 극단 Y 연습현장 스케치 영상(http://bitly.kr/Itvkv8)
콜렉티브 뒹굴의 연습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한다면?
(단원 D) 청년청이라는 미완성의 공간을 (미완이라 함은 그 공간의 구성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고, 뒹굴 팀조차 입주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서술한다. 뒹굴 팀이 청년청이라는 공간을 어떤 장소로 사용해 나갈지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이용해 연습실 참관을 온 외부의 예술가들을 화성탐사 로봇들의 서사로 안으로 끌어들였다. 참여자들은 화성을 탐사하는 로봇들과 일치되며 미지의 공간인 청년청을 탐험하고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고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수행하는 임무들 사이에 연극예술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서사가 한 겹 더 덧씌워지는데, 그것은 사실에 대한 관찰에 머무는 로봇들과는 다른 맥락으로 우리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들을 감지함과 동시에 확장시키는 시도였다.
(단원 B) 6-7년을 함께해온 팀이라서 그런지 자치규약이 꽤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칫 딱딱해 질 수 있는 내용을 재치 있게 담아내어 열린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그 내용이 상당부분 내가 지향하는 지점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 내 역할분담은 수직적 위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있어서 이 팀은 리더와 팀원들이 어떤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연습 참여 당시에는 리더의 결정권에 대해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았고 그의 결정을 팀원들은 잘 수용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늘의 프로그램을 짜고 진행을 맡은 사람이 우연히 리더였던 건가? 물어보고 싶다.
아무튼 현재 우리는 천천히,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결정하는 일을 뒹굴 팀은 성큼 걸어갔다. 짬의 차이인가? 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방법이 달랐던 것도 있는 것 같다. 각자의 방식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느낀 건데 '단원 B'한테는 천천히 가는 것이 안전하다.)
연습공간을 처음 만날 때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탐사하도록 했는데, 그 덕에 '다른 팀'이라는 거리감을 지우고 참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 공간 내에 나만의 작업실을 정하고 꾸미면서 다른 팀의 연습 참관이 아닌 체험학습에 온 것만 같아 마지막 즈음엔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잘 밟을 수 있게 설계 한 것 같다. 개인의 창작능력을 원활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원 A)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프로그램 기획자의 커다란 그림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기본 자료로 준 내용들과 결론적으로 도출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오히려 프로그램 하는 동안은 어느 정도 잊고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결과물과 느낌은 내 고유의 도출이기도 하고 기획자가 의도한 도출이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처음부터 어떤 방향에 갇히거나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형식이나 세계관(?) 등의 구축을 성실하게 해놓아 소극적이거나 참여를 주저하는 참여자들도 커다란 용기를 낸다기보다는 작은 동기나 의지로도 참여할 수 있었다.
(단원 C) 첫 만남부터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까지 설렘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뒹굴 팀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생각들을 어떻게 발현시킬까 궁금했다. 이런 참여가 처음이라 좋은 긴장감과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데 반대로 더 집중해서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 방식이 인상 깊었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나의 다양한 감각을 자연스레 사용하게 하였고,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뒹굴 팀은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구나 처음 느끼는 이 신선한 기분으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그들의 작업 속에 녹아들었던 것 같다.
오늘 본 것을 극단 Y의 언어로 옮겨온다면?
(단원 B) 청년청 공간에서 제한을 두지 않은 점과 시청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점, 한 달 동안 오를 계단을 하루 만에 올라보았다는 점, 사람의 음성이 아닌 카톡방의 로봇이랑 소통했다는 점 등등의 진행과정들이 잠들어있던 몸의 감각을 조금 깨워주어서 신이 났었다. 또 지향하는 점이 닮은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어와 분위기는 우리와 완전 달라서 신기했다. 하긴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돌아가면서 한명씩 프로그램을 짜고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모두가 함께 실행하면서 어떠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것도 충분한(충분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많은-) 대화과정이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의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 A) 매번 팀원들이 돌아가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타 팀원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은 한 프로그램 당 팀원 수만큼의 새로운 생각, 개념, 언어를 수집할 수 있게 한다. 또 그것은 팀원들은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의식적인 발견, 반복되는 검열이 없어도 말이다. 이것을 거친 언어로, 그 순간만큼은 외부와 잠시 차단되고 기존의 방식들을 망각함으로써 수행되는 방식이라고 표현한다면, 우리 팀은 거꾸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밟아나감으로써 우리를 다시 재정립하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되도록 기록하고, 물어보고, 되돌아가면서 우리만의 기호, 언어, 방식을 찾는다. 이러한 수행방식의 차이로 인해 팀의 분위기나 텐션, 서로를 대하는 방식, 협의하는 방식 등에도 다른 지점이 생겨나는 것이 신기했다.
(단원 C)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을 한곳으로 집중하는 과정이 3-4시간 동안 지루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설렘과 즐거움으로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한 뒹굴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단원 D) 극단 Y는 결과만큼 과정을 중요시하고,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편안하게 예술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뒹굴 팀의 내규는 그런 극단 Y의 지향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뒹굴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는지 궁금한 지점이 있었다. Y의 시간들 보다 더 긴 시간을 쌓아온 팀이라 상호간에 쌓인 맥락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PC하려 하지 않고 작업하겠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PC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장치를 개발하겠다. 그 장치들을 개발하는 것이 PC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뭘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연습의 참관이라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동의는 프로그램에서 생산된 결과물을(그 결과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내어놓는 것에 대한 동의와 등치될 수 없다. 만약 프로그램의 성격상 미리 결과물에 대한 공지를 할 수 없었다면, 끝나고 난 이후에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했을 것이다. (발표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이 무시되었고 이것이 뒹굴에서 말하는 PC하지 않기 위한 노력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의 창작 다른 결과들을 내기 위해 과정에서 필수적인 어떤 것들을 생략해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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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하자의 실험,
“보편성 없이 연극하기”에 대한
콜렉티브 뒹굴의 관찰
@ 문래예술공장 3층
▷ 프로젝트 하자 × 콜렉티브 뒹굴 연습현장 스케치 영상(http://bitly.kr/aqa7hq)
프로젝트 하자의 연습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한다면?
배우 각자의 존(zone)으로 구성된, 참여형 공연에 가까운 연습 오픈이었다. 4개 존의 제목은 각각 ‘디디’s 키친,’ ‘천칭자리,’ ‘모모의 팔레트,’ ‘지구born’이었다. 뒹굴리안들은 프로젝트 하자의 발표 전 첫 참여 관객으로서 연습실 오픈에 함께 했다. 존마다 마련되어있는 팀원 각자가 제시하는 이야기와 방법을 참여자들과 함께 경험해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디디‘s 키친은 설정된 상황에 퍼포머와 참여자가 관계를 맺는 방법론을, 천칭자리는 하나의 키워드(그 존의 주인이 관심 있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양식으로, 구성되었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질문에 그림으로 답해보는 시간을 갖는 모모의 팔레트와, 계단의 층을 활용하여 개인의 기분의 층을 표시한 사진 전시 및 도슨트 퍼포먼스 형식의 지구born도 있었다. 개인의 기억 또는 개인의 감각을 그림이나 논의, 일상적인 방식으로 다정하게 풀어내어, 관객 역시 자신의 감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시간에 가닿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하자는 ‘보편성이 아닌 개별성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실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집단, 보편이라는 말 아래 쉽게 뭉개버리는 ‘개인’을 조명하기 위하여 하자는 팀원 개개인에게 집중해보는 과정을 거쳐 온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지점을 관객에게도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법론을 택한 것 같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그렇지만 개인이 진심과 애정을 듬뿍 쏟은 각자의 키워드와 재료들이 하나씩 참여자들에게 소개되었다.
프로젝트 하자라는 팀은 ‘따뜻함’이 베이스가 되어있는 팀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우리 팀에 없는 또는 부족한 질감의 것이었다!) 개별성, 개인에 대해 묻고 답해가는 과정이 매우 정성스럽게 다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몰두해주고 집중해주는 시간을 가져온 것 같았다. 그런 개별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관객과 만나는 때에도 ‘하자의 힘’이 되리라는 기대도 되었다. 지극히 자기 얘기를 담담히 이어가면서, 관객에게도 그러한 시간을 열어주는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 본 것을 콜렉티브 뒹굴의 언어로 옮겨온다면?
하자가 팀원 각각의 이야기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고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뒹굴의 작업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피드백 과정에서 두 팀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가 관찰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비슷한 연습 방법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결의 과정과 결과를 냈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뒹굴도 ‘개별성’이란 키워드로 설명 가능한 지점이 있지만, 이 개별성이란 말이 하자에서 사용될 때와 뒹굴에서 쓰일 때 전혀 다른 질감인 것 같다. 뒹굴에게 개별성은 개별 작업자의 창작 방법론, 콜렉티브를 구성하는 개인 작업자로서 개별 창작 언어가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특징으로 구현된다. 뒹굴의 개별성은 관객을 호명하는 때에도 드러나는데, 섬세하게 타겟팅되어 초청된 (소수) 관객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주로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자가 작업자의 개별성과 참여 관객의 개별성을 만나게 하는 지점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1) 뒹굴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흥미가 있다기보다 개인의 ‘방법론’을 찾고 모으는 데에 흥미가 있으며, 2) 참여자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들어가는 경험보다는 오히려 특수한 개인으로서 거리를 두도록 하여 사회/집단적 맥락을 바라보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자가 개별성을 키워드로 삼으며 개인의 이야기와 내면이 잘 보이는 작업을 한 것이 뒹굴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나도 그런데’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있었으며, 피드백 시간에도 ‘힐링’이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개인의 감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대한 갈증이 관객에게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뒹굴이 전반적으로 감정이나 내면세계에 대한 따스함이 매우 부족(하다못해 춥고 시린 작업)하기 때문에, 가끔은 잊는 지점이기도 하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것들’을 꺼내 볼 수 있는 시간, 그것을 꺼낼 수 있도록 적절한 판을 까는 것, 그리고 꺼낸 것을 유의미하게 구성하는 것 역시 작업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하자의 작품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하자의 퍼포머가 뒹굴에게 ‘퍼포머가 어떻게 할 때 참여자가 마음을 연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참여자가 in 할 수 있는 환경, 예컨대 퍼포머가 참여자와 관계 맺는 방식, 공간의 빛과 음악 세팅, 타이밍 조절 등을 기획자이자 퍼포머로서 확실하게 ‘결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더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뒹굴이 퍼포먼스 자체와 더불어 공간 세팅이나 맥락에 관심을 크게 가지는 편이라 그렇게 대답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젝트 하자 팀원들과 질문을 주고받고 피드백하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고 보아내는지, 우리 팀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작업하는지 까지를 관찰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대 동료 작업자들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체험해보고 같이 이야기해보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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