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주
1년. 그가 한국을 떠나 있었던 시간이다. “질문만 던지는 연극을 만드는 데에 질린” 그는 무언가 답을 찾기를 기대하며 독일행을 택한다. 150편이 넘는 연극을 보고, 독일,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그는 그 1년을 보낸다. 무언가 답을 주는 연극을 그는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은 자유〉(김재엽 작, 연출)은 그 1년의 성과 ― 인터뷰, 사진, 영상, 연극 리플렛까지 ― 를 모아 만든 연극이다. 두산아트센터 인문극장 “갈등” 시리즈의 하나로 상연되고 있다.
어떤 연극인의 (특별한) 일상에 관한 연극이므로 〈생각은 자유〉는 자연스레 연극에 대한 연극이 된다. 연극의 도시 베를린에서 연극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여주고, 베를린의 연극인들이 가진 생각을 들려주고, 그것들을 보고 듣는 한국의 연극인이 하는 고민을 풀어 놓는 그런 연극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연극인 동시에, 작가가 본 여러 연극들, 그리고 그가 만든 여러 연극들에 대한 연극적 비평이다.
〈생각은 자유〉를 이끄는 것은 거의가 주인공의 방백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읊는다. 그러고 나면 그 구체적인 상황이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된다. 그렇다 보니 무대 전환이 빠르고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맡는 일도 많다. 때로는 관객 일부를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다소간 산만한 가운데, 적지 않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
시작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세월호다. 그가 베를린으로 떠난 2015년의 사회적 화두였고 따라서 연극적 화두였던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이 연극은 연극의 사회적 소명을,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세월호만은 아니다. 전작의 소재였던 용산 참사나 민중총궐기를 주최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수감 소식 (마침 5월의 마지막날 그의 형이 확정되었다. 징역 3년, 벌금 50만원.) 등 몇 가지 사회적 이슈들이 언급된다.공공극장에서의 작품 검열이 있는 나라에서 연극을 해 온, 용산 참사를 “그저 소재로 가져다” 연극을 만들었던 그에게 베를린의 연극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공극장 예술감독이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기획하는 모습도, 이주니 제 3세대니 하는 사회적 이슈들이 극장에서 직접, 그것도 당사자들에 의해 다루어지는 모습도 말이다. 〈생각은 자유〉는 그런 모습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에 1차적인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했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정확히는 ‘연극인’인 관객들에게 말이다. (전혀 우습지 않은 장면들에서 웃었던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배우나 언급되는 연출가를 알고 있는 연극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외의 연극을 접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혹은 한국의 연극 이상의 것을 상상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새로웠을지 모르겠다. 무대에서 반복되는 대사 중에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밖에 있으니 보인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그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되물음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 관심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물리적인 ‘밖에 있음’을 요구하는 어떤 것은 아닐 터이다.
그의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것을 “이주Migration”라고 표현한다. 돌아갈 곳과 돌아갈 날을 정해 둔 이에게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이주민”의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시각에서부터 그는 “세계시민”의 시각을 또한 배운다. 그러나 나는 의심한다. 그의 시각이란, 가장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관객의 시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안내서 한 권을 들고 극장을 찾아 골목골목을 돌아 다니는, 적은 노력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남이 찾은 답을 얻어 가기 위해 극장을 찾은 그런 관객 말이다.
극장과 광장
『연극과 정치』였던가, 그가 읽은 책은 그에게 고대 그리스 시민들에게 극장에 가는 일은 의무였다고, 이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그런 의무였다고 알려 준다. 극장이란 곧 국가의 대소사를 논하는 광장이요 토론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 정신이 오늘날 베를린에 살아 있음을 본다. 사회적 이슈들을 토론하는 곳으로서의 극장, 낯 모르는 이들이 말을 나누는 곳으로서의 극장을 그는 그곳에서 체험하고 돌아 왔다.귀국을 앞두고 짐을 싸는 그에게 아내는 묻는다. 새로운 연극이 무대에 올라야 할 곳이 극장일지 광장일지를 말이다. 그의 답은 단순하다. 극장을 광장으로, 광장을 극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연극이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라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가 출국 전에 품었던 ‘답을 주는 연극’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소위 선진국의 사례를 알리는 이 연극은, 관객을 무대에 올리고서도 그들에게 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그 이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껏 제도화된 극장 안에서 이 연극이 만드는 공간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교실에 가깝다. 아는 (것으로 전제된) 사람이 모르는 (것으로 전제된) 사람을 상대로 혼자서 내내 이야기하는 그런 교실 말이다.
글쎄, 나는 그의 전작들을 보지 못했고 그가 얼마나 달라져서 돌아온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나 확인한 점이 있다면 한 장면 정도를 빼고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내내 엄마의 역할이었다는 점 정도다. 그 1년간 그가 연극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가 과연 충분히 경험하고 충분히 고민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연극만 따로 떼어 고민하는 것으로는 ― 연극과 이어질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 충분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새로운 종류의 광장을 열 준비가 되어 돌아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연극이 그러하듯, 광장은 연극이 끝난 이후에 열릴 것이다. 극장 바깥에서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 광장을, 책 한 권 (그가 읽은 『연극과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 이상을 하지 않은 채 끝나 버리는 (그 정보들을 물론 연극은 일종의 현장성을 갖고서 전하지만) 이 연극이 연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광장을 여는 것은 연극인들이 아니라 늘 관객들이었다. (그는 예술가들이 최초로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
한국 바깥에서 살아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극장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극장으로서의 광장, 광장으로서의 극장을 운운하지 않아도 이미 곳곳에 광장이 있다는 사실이라든가 하는 점들 말이다. (어느 정도는 겸손이겠지만) 그 스스로 그저 소재로 삼았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용산 참사를 갖고서 거리에서 싸우고 토론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었던 사람들이 있었듯 말이다.극장이 광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교실의 꼴을 벗어나는 일일 터이다. 작가나 연출이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면, 극장에서 ‘가르침’은 일방향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혹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장에 모인다고 생각하고서 만들 때에야 연극이 광장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지는 연극을 만들고자 하든, 답을 주는 연극을 만들고자 하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해 본 적 없을 질문, 관객들이 갖지 못한 답이라는 믿음은 극장을 지루한 교실로 만들 뿐이다. 광장이라는 수사가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평등한 이들이 자신의 관점을 내세우고 서로를 설득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극장이 광장이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점은 그러한 평등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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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엽 작/연출
〈생각은 자유〉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2017.05.23.-06.17.
5월 30일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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