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연극 잔치를 만나다
‘빨간 건물’을 찾아가는 길. 예매했던 공연의 시작은 30분이나 남았는데, 길을 건너기도 전에 음악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급한 마음에 괜스레 신호등을 노려보다가 파란 불이 들어오자마자 뛰어가 ‘빨간 담벼락’의 구멍에 눈을 대 본다. 가야금 옆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한복차림의 여자와 그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미니 야외극장! 도둑 관람을 계속 할까 하다가 가야금에 돛이 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정문으로 달려간다. ‘이건 제대로 봐야 한다!’그렇게 들어선 국립극단 마당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극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평소에는 부대시설이나 빈 공간이었던 곳에 저마다의 이름을 주고 약간의 조명을 세워 여러 개의 ‘극장’을 만든 것이다. 각 극장에는 ‘객석’도 있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 큰 세트를 놓고 세워진 ‘작큰극장’에는 캐릭터 방석이 깔린 원기둥 모양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등나무 아래 평상을 무대 삼은 ‘등나무극장’과, 담 사이 구멍으로 훔쳐볼 수 있었던 ‘느티나무극장’에는 층이 낮은 계단식 객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는, 극장 사이를 뛰어다니는, 주저앉아 블록놀이를 하는―하여간 자기 일에 매우 정신을 집중한―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저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2016>을 만난 것이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어린이청소년극 축제로, 1인극 작품 개발과 어린이청소년극 배우의 창작 역량 강화, 지역 예술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창작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작은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이다.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발된 배우, 이야기꾼, 독립예술가, 그림책작가, 예술교육자 등이 워크숍을 통해 이 ‘잔치’를 준비한다고 한다. 올해에는 어린이연극인 작은극장 참가작 11작품, 청소년 대상 연극인 청소년작은극장 4작품과 자발적 창작모임인 ‘씨앗모임’의 6작품, 그림책 작가들의 8작품 등등이 국립극단 공간 곳곳을 채웠다. 해를 거듭하면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져, 많은 가족들이 찾는 잔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축제다운’ 축제
함께 공연을 보러 간 친구도 도착하자마자 감탄사처럼 외쳤다. “여기 완전… 완전… 아비뇽이잖아!”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이 풍문으로나 주워들은 외국지명을 떠오르게 한 것은 그 자리가 “연극 축제”에 대한 특정한 기대들을 실현시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을 통해 충족된 기대 중 하나는 다양한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선 스쳐갔을 공간들 여기저기에서 많은 공연이 동시에 상연되었고, 각 공연은 판소리, 인형극, 가야금 등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자주 관람할 수 없었던 형태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며, 모두 무료였다. 입장료도 없이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짧게는 25분에서 길게는 50분 남짓 되는 여러 공연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 한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들 안내 피켓을 든 크루들이 관객들을 한줄기차로 세워 다음 공연의 ‘극장’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관객들은 여러 피켓 아래에서 다음엔 무엇을 볼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했다.(야외공연에 한해서는) 공연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의무화되었던 ‘매너’들이 불필요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은 공연자에게 고정시킨 채) 누워서 보기도 했고,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을 먹으면서 보기도 했다. 한참 뛰어놀다 와서 공연의 중간부터 관람하기도 하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공연예술을 만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