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일요일

"배우가 행복한 극단 애인": 김지수 대표 인터뷰

글쓴이_최희범

2015년 4월 25일 부쩍 따뜻해진 토요일 오후에 구로구 오류동의 한 카페에서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를 만났습니다. 극단 애인은 장애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극단이며, 김지수 대표는 국내 장애 연극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애’만이 이 극단과 이들의 작품을 특징짓는 단어는 아닙니다. 2013년도에 게릴라 극장에서 본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진 특성을 무시하거나 무마하려 하지 않고, 끌어안아 작품에 녹여내려는 시도와 노력의 결과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연극과 연기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한 극단 대표의 진지한 고민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수 대표가 애인을 창단할 때부터 가지고 온 중요한 목표는 장애인 연기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는 극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인의 방향성에 맞추어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 문제를 중심으로 편집한 인터뷰 내용을 드라마 인에 소개합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서 주제 별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소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최희범: 원래 ‘휠’에서 활동하시다가 나와서 애인을 창단하신 이유가 ‘배우가 행복한 극단’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하셨는데, 혹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김지수: 휠이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사람도 많아지고 해야 할 일도 많아졌죠. 제가 보기에는 단체는 계속 커지는데 거기 있는 배우들은 역량 강화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단체가 커지는 것 보다는 배우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애가 있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장애인이라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휠의 방향이) 그것과 좀 다른 것 같아서 나오게 되었죠.

최: 연극을 할 때 처음 부딪히는 큰 난관이 같이 할 사람들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의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국토 종단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죠? (웃음) 국토 대장정이랑 연극이 그렇게 잘 연결이 되지는 않는데, 단원들을 찾고 힘을 모으게 만든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김: 제가 꿍꿍이를 가지고 갔죠. 처음에 단원들을 찾을 때 연기를 잘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나 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꼭 연기를 안 하더라도 서로에게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백우람 배우 같은 경우는 사진을 전공했거든요. 국토대장정에서 그 친구가 사진을 찍었어요. 생각하기에 저 친구와 연극을 하게 되면 연기를 안 하더라도 우리 극단이 연습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든 전시회든 그 친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친구는 장애가 굉장히 심한데 끊기 있게 하더라고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몇 분을 만났죠. 그 때는 연락처만 받고, 나중에 연락해서 연극을 할 생각이 있는 지를 물어 보았는데, 다행히도 다들 흔쾌히 함께 해 주었어요. 그 때 ‘내가 연극을 하게 되나보다…’ 생각을 했어요. 팀이 꾸려지니까.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최: 연기를 잘 할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배우 분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2013년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배우들이 뭔가 특별하다.

김: 그건 연출이 잘 끌어 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연주 연출님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계속 같이 해 주셨는데, 이연주 연출님을 만난 것은 저희 극단에 있어서도 그렇고 저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행운 같은 일이예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생각, 그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배우에 대한 생각과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 맞았어요. 사실 연출이 삼 년 동안 한 작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끝까지 매달려 주신 거죠. (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2010년부터 2013년도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 공연했다.) 제가 “올해도 다시 이거 가지고 하면 어때요?” 하면 그러자고 해주셨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연주 연출님의 노고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배우들도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정말 저희 배우들과의 작업은 기다려 주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연출님도 말씀 하세요. 애인이랑 작업 하면서 배우들을 기다려 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저희 극단이 알려지게 된 것도 <고도를 기다리며> 때문이고.. 배우들도 한 작품을 계속 하면서 자신들의 연기와 움직임을 생각해 보고 발전할 수 있었어요.

최: 이연주 연출과는 전속적으로 함께 하시는 건가요?

김: 그렇지는 않고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고, 2012년도부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이연주 연출님도 다른 작업들을 또 하셔야 하니까. 지금 이연주 연출님은 <노란 봉투> 조연출을 하고 계세요. 저는 초반에 외부에서 다양한 연출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어요. 왜냐하면 연출들마다 스타일이 있잖아요. 배우들이 자기의 몸이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알기 전까지 다른 연출들이 자꾸 개입을 해서 그 스타일에 맞추어 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만의 방식을 찾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저희는 비장애인을 따라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사실 편하잖아요. 내가 장애인이지만 우리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도 비장애인들의 움직임을 해야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있거든요. 여기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것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그런 것에서 생각을 같이 한 이연주 연출가가 있었고. 그래서 저희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지고 그런 것을 해보려고 했어요. 계속 그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다른 작품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요. 한 작품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배우들이 자기 몸에 대한 어떤 체득을 하기에 더 좋다고 생각을 해서요.

최: 배우에 대한 생각이 이연주 연출님이랑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인가요? 대표님께서는 <한국연극>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이 비장애인의 몸짓과 말을 흉내 내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몸, 호흡, 말투까지 자신의 것으로 녹여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몸과 호흡, 말투까지 녹여내는 연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예들이 있었는지?

김: 사실 이건 연출님이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웃음) 제가 생각한 것만 말씀 드릴게요. 예를 들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에는 다른 캐스팅으로 했었어요. 그 때 언어 장애가 있는 친구가 블라디미르를 했었거든요. 블라디미르의 대사가 많은데, 그 친구가 그 때 연극을 처음 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목소리가 작고 대사가 잘 안 들렸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연출님도 그렇고 언어장애 때문에 대사를 또박또박 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정서가 중요하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특히 이 대사들이 의미 있고 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되풀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그 정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더 신경을 쓰라고 했고요. 사실 관객들에게 대사가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물론 답답하실 수는 있는데, 저희는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가 꼭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비장애인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전달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처럼 대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가는 거죠. 함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몸을 이용해서 표현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침묵으로도 할 수 있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갔던 것 같아요. 또 배우들끼리 서로 기다려 주고 보완해 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에스트라공 역할의 정식 씨는 지적 장애가 있었어요. 언어 장애는 상대적으로 조금 있고. (블라디미르 역할의) 백우람 배우는 언어 장애가 있고요. 그러면 언어 장애가 있는 배우를 더 기다려 주는 거예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아요. 많이 싸우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완해서 전달 할 수 있는 거죠.

최: 그렇다면 극단 애인에게 있어서 좋은 연기란 어떤 것일까요?

김: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표현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애가 있는 내 몸과, 내 언어와 내 표현이 어떤지에 대해서 본인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그것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좀 힘들 수는 있어요. 관객들을 고문하면서 연기하면 안 되는데…(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연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는 내 몸도 배우의 움직임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것을 가지고 어떻게 대중을 만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거죠. 정서적으로는 역할에 공감을 잘 해야죠. 사실 장애인들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희곡을 읽었을 때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편은 아니에요. 그런 것들도 꾸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읽고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부단한 노력과 학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장애인 극단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장애인 배우들이 어디 가서 배울 데가 없다는 거예요. 단원들 중에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단원들은 연기 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일반 배우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만 특별지도를 해 줄 수가 없으니까 따라 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수강 (신청)을 하고서도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극 작업을 통해서 당연히 실력이 향상돼야 하지만, 자기 개발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자기 계발도 극단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제가 배우들은 평소에도 배우여야 한다. 열심히 책도 읽고 몸 관리도 하고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힘든 것 같아요. 나가서 할 데가 없기 때문에… 물론 배우들에게는 무조건 찾아보라고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는 순간을 너무 좋아해요. 자기가 배우라고 느끼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순간인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배우로서 살아가게 할 것이냐가 고민 이예요. 장애인 배우들의 경우에는 개인이 외부에 나가서 프리랜서 배우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한국연극>에 인터뷰 할 때만 해도 극단이 없어져도 배우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과정이 지나면서 ‘아 극단이 있어야지 배우들도 있을 수 있구나’싶어요. 그런 면에서 극단도 잘돼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이미지 출처: 비마이너(beminor.com)

최: 대표님께서도 연기도 하셨던 걸로 아는데, 대표님께서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저는 연기는… 아니지만..(웃음) 저한테도 고민이 있어요. 저도 역시 연기에는 두려움이 많아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에 막상 무대에 서면 표현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다는 걸 느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제 생각이 갇혀 있는 것 같아요.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갇혀 있는 저를 느껴요.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배우로서 전념하면 그런 과정이 있을 텐데 아직은 저에게 (그런 과정이) 없었고요. 이번에 <장애 제 3의 언어를 말하다>를 하면서,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듯이 장애를 가진 몸에서, 말하자면 “해방”되지 않으면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 역시도 해방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사실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도 굉장히 커요. 내가 배우로서 활동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몸을 해방 시키는 게 사실 제일 먼저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직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몸과 몸에 갇혀 있는 정신까지 해방을 시키려면, 그것도 치열한 싸움의 과정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공연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최: 단원들 모임이나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지?

김: 저희는 어차피 매일 모이지는 못하니까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데. 전에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만나서 뭐라도 했었어요. 그래도 꾸준히 스터디 형식의 모임을 해 왔는데, 공간이 없으니까 스터디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배우들도 사무실이나 연습실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고요. 저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공간 잡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배우들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 배우들이 연극을 하지 않을 때 이 사람들이 배우로서 자기를 계발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공간도 장도 없으니까 그게 안타깝고 미안해요. 어쨌든 매일 만나려고 해요. 요즘도 아카데미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있는데,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죠. 올해 두 번 공연을 해야 하는데 아직 공연장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초조해요. 공간을 잡아야 대관료 같은 걸 책정해서 예산을 정확하게 짤 수 있는데. 공간이 없어요. 연습실도 그렇고.

(*애인에서는 여전히 올해 8월과 11월 공연을 위한 공연장을 찾고 있습니다. 승강기나 경사로가 있어서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한 공연장이어야 하고, 적더라도 휠체어를 타는 관객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추천할 만한 공연장을 아시는 분들은 밑에 답글 하나 부탁드립니다!)

최: 접근성 문제가 있어서 더 그러실 것 같아요.

김: 네. 제가 휠체어를 타니까.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공간, 이런 건 정말 십년이 지나도 별로 해결이 안 되네요. 연습은 대본을 처음 받았다 하면, 1달 반에서 2달은 잡아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연습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초반에 대본 읽고 분석 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서 하다가, 실제로 움직임 연습 들어가면 한 달은 풀로 하죠. 다른 팀들 보다 연습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예요. 분명히 속도의 차이가 있고, 이해의 차이도 있고요.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랑 같이 작업할 때, 비장애인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있어요. 장애인 연극은 장애인 연극의 속도가 있거든요. 비장애인 배우들은 그런 속도를 같이 가는 걸 힘들어 해요.

최: 장애인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공연에서 장애 연극만이 가진 속도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공연은 다 나름의 템포가 있지만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신체적, 물리적 특성이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들의 특성으로서 작용해서 시간과 공간이 독특하게 구성되어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게 가능한 곳이 극장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작품을 더 보고 싶어요.

김: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건 제 생각 이예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라는 최인훈 선생님의 작품이 있는데, 제가 꼭 하고 싶은 작품 이예요. 거기도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대사가 별로 없고 움직임이나 표현이 많이 있어요. 어떤 연출을 만나서 이런 작품을 언젠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품을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되어 있는… 저희들과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최: 애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김: 어쨌든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은, 저는 고전에서 찾고 싶어요. <고도를 기다리며> 처럼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고, 저희 단체와 절묘하게 잘 맞는 그런 작품이요. 그런 고전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연극을 하나의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또 하나는 장애인 극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이야기예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장애인 극단이기 때문에 의무감과 책임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최: 올해 계획은 어떻게?

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휠, 애인, 산 세 극단이 협업으로 아카데미를 하고, 8월에 공연을 해요. 또 서울시에서 지원받아서 강예슬 연출이랑 <무무>라는 단편 소설을 하려고 해요.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 소설인데 작품이 참 좋아요.


이미지출처: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최: 지금 대표님의 삶에 연극이란 어떤 것일까요?

김: (웃음) 어떤 걸까…? 연극을 한 지 8년 되었는데, 점 점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대학로에 수많은 극단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장애인 극단도 최소한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꼭 우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화에 어떤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인이 아니어도요. 저희 이면 더 좋겠지만. 문화 예술의 한 축에 장애인 극단이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극단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감... 너무 의무로만 가는 것 같은데. 저는 연극을 통해서 저희 배우들이나 제 삶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연극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하잖아요.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연극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안 되더라도. 꿈같은 얘기이고, 서울에서는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일 년에 한 번 이라도 나이 들어서도 우리들끼리 모여서 공연 하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최: 단원 분들도 행복 하실 것 같아요.

김: 저 때문이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행복 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사실 연극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장애인들도 가난하죠. 돈이 없죠. 그 중에서 연극해서 더 돈이 없고. 배우들한테 사실 미안하기도 해요. 이번에도 공연하면서 개런티 전혀 없이, 오히려 저희가 돈을 내서 했거든요. 어쩌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는데. 배우해서 돈은 못 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돈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비장애인 단원, 강예슬 연출은 18살에 저희 극단에 들어왔는데, 지금 26살이 되었어요. 작년에 연출로 데뷔 했지만,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고 있죠. 아르바이트하고 연극하고 하니까. 그 친구에게도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어떻게 그 친구가 좋은 연출이 될 지, 여기 있었던 시간이 그녀의 삶에 어떤 방향성이 될지가요. 작년에 (공연 한) <너는 나다>는 이연주 연출가가 강예슬 연출의 데뷔를 위해서 저희 극단에 맞추어 써준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저는 되게 복이 많아요. 같이 했던 사람들이 어쨌든 저희 극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그런 기회들이 있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최: 그렇게 운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저도 ‘나도 좋은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만드시는 힘이 아까 국토대장정에서 극단 단원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최: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들은 거의 여쭤 본 것 같아요.

김: 그럼 제 고민을 조금만 얘기할게요. 사실 장애인 배우들의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늘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올해에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배우들 스스로의 신체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아까 말했던 해방도 필요하잖아요. 또 어쨌든 연출이나 작가나 대표가 공유하는 고민들도 필요하고, 여러 시도도 해 봐야 하는데, 그런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지금 팔 년 차인데, 올해가 저에게는 고비와 같이 느껴져요.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다시 그것을 토대로 우리가 우리만의 어떤 것을, 조금 더 나아진 어떤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되요. 이번 작품 <무무>를 만드는 일도 그렇고요.

최: 정말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아까 단원 분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교육 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화된 것일 수도 있는 시각이나 미적 관점이나 기준 같은 것들이 이런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항상 줄타기를 하셔야 하는 거잖아요. 어디까지를 훈련시키고, 어디까지를 연기자의 조건에 맞출 것인지를. 저도 사실 어디까지를 예술적 혹은 미학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어떤 틀, 어떤 시간과 공간의 틀을 짤 것인지와 어떤 훈련을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고 고민도 많이 되요.

김: 저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요. 어디까지 배우들에게 맞추어야 하고 어디까지는 대중들에게 맞추어야 하는지…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애기를 하는 게 맞는지, 또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실은 배우들이 더 많이 생각을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쉽지는 않고요. 배우들이 연극을 잘 안 보려고 해요. 연극을 보면 자기는 저렇게 못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대요. 저는 배우들에게 “그걸 버리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된다. 저 사람처럼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 극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다 거짓말이 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하는 것이거든요. “너의 눈도 비장애인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냐, 그 눈을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돌려서 우리를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게 사실 너무 힘들거든요. 외부에는 다 비장애인들의 것 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나의 몸과 나의 것을 가지고 표현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교감하고 소통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런 방법을 찾아 가는 게….

최: 저는 비장애인 배우들에게 장애 연극의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연기, 공연들이 좋은 자극과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많은 배우들이 와서 보면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장애인 배우들의 신체가 다르고, 그 중에서도 개개인의 신체가 너무도 다르지만, 사실 비장애인들도 모두 서로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모두가 어떤 특정한 이상적 신체나, 조건, 특성들을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자신의 특성을 말소시켜 가면서 까지. 물론 어디까지를 개인의 특성으로 볼 지,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런 가운데서 장애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큰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제가 (논문에서)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게 아직 설명이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그런 것이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연구를 하고 싶은 게 지금의 목표이자 꿈인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김: 잘 될 거예요. 열심히 해주세요. 저희는 그런 것을 행동으로 찾아가는 입장이고,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론으로 만드실 수 있는 거니까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또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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