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6일 월요일

2015년 3월 장바구니

글쓴이_산책

설연휴, 지난 장바구니에서 소개한 대로 <해롤드&모드>와 <비극의 일인자>를 보았습니다. 새해는 시작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는데 죽음에 대한 연극을 하루 걸러 두 편 관극해서 그런지, 생이라는 것이 그저 허무하게, 연극의 허상이 그저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강하늘 배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박정자 배우는 정말 귀여운 팔십 노인 그 자체였으나, 죽기 딱 좋은 80세 생일 곱게 죽음을 맞는 모드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해롤드의 이야기는 현실과 너무 먼 것이었습니다. 설 연휴에도 요양원에서, 혹은 홀로 집에서 지리한 생을 이어가는 노인들을 생각해봤습니다. 모드처럼 자유롭게, 세상의 질서나 통념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모드처럼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비극의 일인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고일봉이 죽은 아내로부터 전해 듣는 충격적인 두 가지 사실은 “자신이 죽는 것으로 썼던 극중 인물이 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과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생각한 "고일봉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식스 센스 급 반전은 공연 중반 이후 지루하게 예측되었고, 특이하게 삽입된 연극적 표현들은 어떤 의미를 포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툭툭 튀어나오며, 극에 몰입하는 것도 그런 장면을 통해 다른 무엇을 상상하는 것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연극은 허구이지만,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면서 실제감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그들의 연기,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진 후 내쉰 한숨으로만 그 심정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꾸물거리다 3월 작품 예매가 늦었더니 보고 싶은 작품은 두 작품 뿐이네요. 부디 고르고 고른 이 작품들이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3월 12일 ~ 3월 29일, 남산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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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예술 센터의 2015년 첫 작품입니다.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이 B급 정서를 오롯이 보여줄 것 같습니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 들며 극중극중극을 이어간다는 소개는 이제 익숙한 수사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또 성공할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유치하고, 과장된 새로운 장르”,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형식을 통해 연극적 유희성을 획득하는 한편, 관객들에게는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고자”한다는 소개도 마음에 드네요.

<3>, 3월 13일 ~ 3월 29일, 국립극장 달오름 

공연정보 보기

초연도 재연도 놓쳐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재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예매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호평을 받는 작품인데,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지 저도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사실 2013년 <안티고네>에서 만난 신구 배우의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 분들이 보여줄 그 깊이를 기대합니다. <소뿔>과 달리 연극 본연의 표현과 관습(convention)을 유지하는 작품일 것입니다. 두 작품의 관극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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