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_산책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공연 내내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란 단어를 수없이 듣는다. 일반적이지 않게 긴 제목을 공연 제목으로 혹은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으로 부를 때마다, 그 집요함, 고의성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상한 제목이 귀에 딱 붙지 않아 어색하기도 하다. 뭔가 이상하다. 한편, 제목을 외칠 때마다, 지금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란 연극을 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긴 제목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서두부터 오락가락하는 것은, 작품이, 또 작품을 본 감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 공연에 버무려져 있다. 하나씩 맛보았다면, 나름 맛있었을지도 모를 음식이 그야말로 잡탕이 되어, 어떤 맛이 나긴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무대에 올라왔다. 짠 맛 좀 느껴보려고 하면, 매운 맛이 공격하고, 매운 맛을 느끼고 있자면, 시큼한 맛이 올라온다. 솔직한 심정은…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B급 코드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패러디 한 배달의 민족 광고 |
언제부터인가, B급 코드(혹은 병맛)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수 크레용 팝이나, SNL 코리아, “강남 스타일”, 배달의 민족 광고, 가끔 동생이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마음의 소리>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 <킹스맨>도 그런 맥락 안에 있다. 이런 B급 코드의 효과는 꽤 높다. 대중들, 관객들이 B급 코드의 가벼움, 유머, 신선함에 반응하고 환호한다. 다른 사람이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름표 떼는 것을 왜 봐야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젊고 어린 동생들은 병맛코드를 즐기지 못한다며 안쓰러워했다. 점잖은 체 하지 않는 B급 코드는 젊고, 신선한 것으로도 여겨지기도 한다.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은 포스터부터 B급 코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극중극 내의 감독은 “우리 연극은 아무 생각없이 웃게 만들 것”이라고 호언 장담을 하는데, 어떤 부분들은 실제로 그렇다. ‘싼마이 연기’의 달인인 황백호의 연기와 대사는 기가막힐 정도로 저렴하며 가볍다. 극중 ‘옹 순경’과 황백호의 여자 친구(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하다니!)는 산티와 성적(sexual) 코드를 마음껏(?) 발산한다. “오빤 나의 핫도그야.”같은 성적 농담들도 군데 군데 심심치 않게 삽입되어 있다. 성적 코드는 1차적인 본능을 건드리며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강력한 것이지만, 관객들의 공감을 얼마나 끌어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B급 코드 속에, 소고기 개방과 같은 정치 문제, 경찰 수사 문제, 혹은 갑질 문제, 연극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을 숨겨 두고 있으니,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진짜 작가나 연출의 속내, 그 의도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저 맥락없는 섹시 여 경찰은 웃으라고 끼워넣은 것인지, 젠더 문제까지 다루려고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녀들은 섹시미, 백치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줄 뿐, 그것을 깰만큼 신선하지 않다. 그래서 웃음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판을 깔아 두고 마음껏 B급 코드를 보여주지도 않으면서(청소년 관람 불가 연극도 아니고), 이런 병맛 코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고 성찰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극중극의 감독은 소떼 퍼포먼스, 소뿔 장례식, 사람들의 시위 장면, 등이 재미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맥락없이 끼어드는 장면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될 뿐이다. 정부, 빨갱이, 민중과 같은 단어들을 외치지만, 그런 표현들을 굳이 가져다 쓰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vs 실체 없이 이름만 있는
분명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형식을 통해 연극적 유희성을 획득”하겠다고 소개했다. 이 소갯말은 극중극의 감독의 입을 통해 한 번 더 공언된다. 공연을 보신 다른 관객들은 어떤 점에서 이런 면들을 발견하셨는지 무척 궁금하다. 필자는 만화나 영화를 즐기지 않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그래서 이 재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했다. 만화 캐릭터같은 인물들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는 것은 인정한다.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일진 여고생이라든가, 난데 없이 취조 중에 랩을 하는 인물이 있다. 이들은 B급 정서를 드러내면서, 전체 서사의 맥락을 끊어버려, 이야기를 말이 안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만화같은”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같은”이란 수사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극중극중극이 반복되면서 마치 플래쉬백이 되듯, 이미 본 장면을 반복하고, 관객에게 기시감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같은 형식이라 여긴 것일까? 이 작품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극중극중극의 형식은 영화같다기 보다는 연극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극이 극중극이 되고, 여기에 때로 실제 현실—극장 밖에 폴리스 라인을 치라고 지시하는 것 같은—이 난입하면서 (많은 리뷰가 소개하듯이) 무엇이 연극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척한다. 그런데 마치 현실처럼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것도 실제처럼 보이는 허구일뿐이다. 남산드라마센터에 폴리스 라인이 둘러져 있다 해도, 어느 누가 이것을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무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그것인 실제인 척 하는 허구, 자연인인척 하는 등장인물일 뿐이다. 현실과 공연이 다르지 않다고 선언하고, 현실과 공연을 혼동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대로 그것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 아쉽다. 진짜 B급 코드, 연극적 유희성을 달성하고자 했다면, 관객에게 그것을 애써 전하지 말고, 알아차려도 그만, 그 반대여도 그만이라는 대담한 태도를 보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다만, 첫 번째 극이 극중극이었음을 알게 되고, 극 바깥의 현실(인척하는 극)이라고 생각했던 겹이 다시 계산된 극중극중극이었음을 알게 될 때, 관객들은 자신이 본 것이 몇 번째 층위에 있는 것인지 다시 따져봐야 하는 인식의 즐거움은 누릴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