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경
북적거리는 도시 속을 느릿하게 미끄러져 가는 버스 안에서 뒷좌석에 몸을 묻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본다. 지나는 거리마다 차와 사람으로 가득하다. 모두들 빠르고 익숙한 몸짓으로 각자 제 갈 길을 가느라 바빠 보인다. 두산 아트랩 하반기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극장을 찾는 마음은 설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사이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린 길 위의 풍경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광장은 이렇게나 넓고, 하늘은 이렇게나 높으며, 시간은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가는데, 몸과 마음은 버스 뒷좌석에 묻힌 채 덜컹덜컹 고빗길을 넘어간다. 지금 여기, 우리가 속한 이곳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놓은 세계인가. 우리는 어떻게 지워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역사가 한 권의 책과 같다면, 우리의 지금 이 순간들은 어떠한 문장들로 서술될 것인가. 세상이 한 편의 연극과 같다면, 내가 존재하는 이곳은 어떠한 장면들로 구성될 수 있을까?
이파리드리의 <별일없이 화려했던>은 별일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20대를 노래한다. 두 명의 배우와 두 개의 큐브가 엎치락덮치락하며 평범한 2000년대의 나날들에 매듭을 엮는다. 자취방, 과방,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연구실, 동네 호프집… 장소가 바뀌고, 옷이 바뀌고, 유행가도 바뀌고, 이상형 마저 핑클에서 소녀시대로 바뀌어 가지만, 한 해 두 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그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현은 여전히 기현이고, 성우는 여전히 성우이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이지만 언제나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20년 지기 절친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 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는다. 단순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기억들(souvenir)과 과장된 몸짓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구성 속에서 예의 그 공감의 정서를 느끼기보다는 보편적 추억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직면해야만 했다. 무대를 중심으로 기역(ㄱ)자로 배열된 객석에서는 동시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건너편의 관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롱다롱한 추억 속으로 채 빠지기도 전에, 나의 지난날들을 돌이키기도 전에, 먼저 웃고 먼저 끄덕이는 낯선 사람들과 대면해야만 하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무대 위에 펼쳐진 이야기가 다양한 의미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낡은 기념사진 같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것이기에 특별히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똑같은 표정들로 가득한 단체사진처럼.
아프니까 아직 청춘인 건지 청춘이라 아직 아픈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하고 나 또한 별다를 것도 없지만, 그러니까 괜찮다는 말은 정말로 괜찮은 걸까? 잔잔한 호수라고 해도 그곳을 건너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히 물장구를 쳐야만 하는가. 호수에 내던져진 이상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헤엄치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헤엄칠 수도 없고, 또 헤엄의 방식에는 정답도 없다. 어쩌면 나는 극장에서 나마 너무너무 진부해서 오히려 신선한 무언가를, 아니면 너무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놀라운 무언가를, 뭔가 그런 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밥 한 끼 하자는 정겨운 인사조차 무색해지는 요즘에는 특히나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이 무얼까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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