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두산아트랩 리뷰 8
에스티
약 한 세기전 전기 조명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 아돌프 아피아는 장차 조명이 연극 무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 내다보았다: "라이트는 거의 기적적인 유연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밝기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으며, 팔레트처럼 색깔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것은 음영을 창조할 수도 있고, 음악이 그러는 것처럼 공간에 진동의 조화를 퍼뜨릴 수 있다. 우리는 조명에서 공간의 표현력 전부를 추출할 수 있다. 물론 그때 공간은 연기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1954, 파비스 <연극학 사전>에서 재인용). 다른 곳에서도 아피아는 조명의 "무한히 크고 다양한 효과"를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 전기 조명은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피아는 무대의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 통일성"을 갖춘 미래의 연극을 구상했고, 크레이그 역시 무대 위에서의 이미지, 동작, 리듬 등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이 연출가에 의해 총체성을 획득한 새로운 예술을 기대했다. 그들의 시대에 그것은 기대에 불과했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꾼 미래가 우리에게는 이미 현실로 자리하고 있다.
카입/황정은/이경화가 함께 만든 "타토와 토"를 보면서 우리 역시 아피아나 크레이그처럼 미래의 연극을 꿈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물론 이번 공연 제목 앞에 "다원"이란 레테르가 붙어야 한다는 건 아직 아피아/크레이그의 미래 조차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무대 예술이 다원적 요소들의 종합 혹은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다원연극"이란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다원이란 접두어는 여전히 연극이 텍스트와 배우의 연기 중심의 예술임을 방증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대에서 시도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는 미래 연극에서 시각적 요소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지 내다보게 해주는 기회로는 충분하다. 공연 중간에 하드 웨어 문제로 잠시 중단 되었던 것도 불편하기 보다는 그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말끔한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연의 일부같이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 같은 공간에서 터져버린 조명기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다.
우리가 좀더 나이가 든 미래에 보게 될 연극에서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고 있는 현란한 CGI(computer-generated imagery)가 사용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서 영화의 제작 환경이 연극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다. 장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과는 별개로 배우가 실제로 연기하는 환경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스틸컷으로 보게되는 영화 제작 현장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최종적으로 보게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배경은 온통 초록색 스크린 (크리스토퍼 리브가 수퍼맨이던 시절만 해도 파란색이었는데, 헐크가 만들어지는 지금은 초록색이다) 으로 뒤덮여 있고, 배우들은 텅 빈 공간에서 앞으로 후반작업에서 채워질 그 영상들을 상상하며 연기를 펼친다. 이순신 장군에게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었다고 하나, 명량은 단 세 척의 배만 제작한 다음 복사하기와 붙여넣기--훨씬 더 복잡한 실제 작업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로 채워넣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 빌>이 나왔을 때, 연극 공부를 갓 시작한 나로서는 그 영화가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가 마땅히 보여줘야 할 사실적 일루젼을 취하지 않고 믿기로 하기 make-believe 의 방식으로 그냥 거기 집이 있는 걸로 한다, 또는 무시무시한 셰퍼트가 짖고 있는 걸로 한다는 식으로 장면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뒤 우리가 보는 많은 영화들이 그런 식으로 촬영된 다음 후반 작업이란 걸 하면서 일루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같은 CGI를 보는 것도 분명 재미있는 일이지만, 나는 그 장면이 촬영되던 순간의 연극적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촬영장의 상황이 그대로 무대로 옮겨져 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무대 위에 그린스크린을 설치해 두고 배우들이 연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아무 것도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을 온전히 즐긴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 혹은 돌아가는 길에 유튜브로 CGI가 채워진 버전을 다시 보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난 지금 2100년대를 얘기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 초기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도된 키노드라마가 기술의 발달로 요즘 재활성화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만큼 무대연극과 영상의 접목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도전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인터렉티브 연극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좀더 잘 알려진 텍스트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텍스트가 낯설 수록 관객은 텍스트에 주의하게 되고 결국 텍스트가 주도하는 연극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작하는 입장에서야 수개월간 그 텍스트가 익숙해졌겠지만 처음 보는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인 '나머지 요소'들로 전락한다. 무대 위에서 오로라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하지만 텍스트가 오로라를 반복적으로 선창하고 ("오로라, 라, 라, 라 ...") 그것을 비쥬얼로 보여준다면, 그러한 인터렉티브는 잠시 신기할지언정 그동안 재현적인 연극에서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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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저의 2014 두산아트랩 리뷰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예술가 여러분과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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