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공중파 음악방송의 책임프로듀서가 립싱크 가수에 대해 출연을 제재하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립싱크 불가 방침은 이미 수 년 전에 생겼었고 쭉 있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화면 구석에 테이프 표시가 보이면 립싱크 무대, 없으면 라이브 무대라는 구별 방식을 알고 있었고, 어느샌가 테이프 표시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찬 무대를 꾸며내면서도 라이브로 노래까지 소화하는 요즘 아이돌들은 그만큼 고강도의 트레이닝과 준비 기간을 거쳐서 그렇겠거니 한 것이다. 하지만 립싱크 불가 선언을 한 프로듀서에 따르면 요즘에는 무대용 라이브 버전 AR(All Recorded) 음원이 따로 있어서, 시청자들은 립싱크 공연도 라이브 공연으로 알고 본다고 한다. 그는 립싱크 무대를 시청자 기만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이 뉴스는 "금붕어 가수 퇴출"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K-POP, 또는 아이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장르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팀들 중 대다수가 아이돌일 뿐더러, 음원차트 순위나 해외수익율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립싱크 제재 방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장르 또한 K-POP이다. K-POP은 그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안무와 퍼포먼스 등 음악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완전히 라이브로 공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없다면 K-POP은 음악 자체로도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K-POP은 듣는 음악보다는 보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을 비롯해 가수의 외모, 의상, 안무, 무대구성 등 모든 비주얼 컨셉과 연출적 요소들까지도 K-POP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히 K-POP을 음악의 한 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 전반으로 확장해서 본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연을 사건(event)으로 보는 공연예술의 기본 전제 하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결국은 중점이 되는 노래가 정작 무대 위의 순간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라면 K-POP 퍼포먼스는 공연이 될 수 없는가?
퍼포먼스를 빼놓고는 EXO를 말할 수 없다! (출처: EXO “늑대와 미녀” M/V) |
K-POP을 존재론적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을 저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음(liveness)에 대한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의 논의를 빌려오기로 했다. 아우스랜더는 연극학에 뿌리를 둔 퍼포먼스 이론을 음악, 매체, 기술에 관련시켜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오늘날처럼 매체화된 문화에서 매체화된 공연(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아이돌 가수의 퍼포먼스)로부터 그 권위를 얻는다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 즉 라이브 공연의 권위는 그것의 매체화된 버전으로부터 다시 얻기 때문에, 분명히 대치되는 것으로 보였던 두 항들 사이의 도식은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 속의 공연은 그 가수가 실제로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가치를 얻는 것인데, 촬영되고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이브 공연은 결국은 텔레비전으로 보여질, 그것의 연출된 이미지로부터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랜더는 텔레비전으로 보여지는 시각 이미지가 녹화된 것이든 실황중계이든 간에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며 텔레비전에 있어서 반복 재생이나 재방송과 생방송 사이의 직관적인 구분은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공연의 재생산이나 반복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공연이라고 주장한다.
아우스랜더의 논의에 빗대어 K-POP 퍼포먼스를 보면, 그 공연을 위해 실제로는 노래, 안무, 연기, 무대 구성이 한번에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매체화되어 텔레비전 이미지로 송출되는 순간 그것은 라이브 공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에서 K-POP 가수들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리고 노래에 있어서 라이브가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는 시각은 여러 단계에서 부적절하고 심지어 불공평하다. 앞서 언급했던 뉴스가 논란이 되었던 이유에는 한 아이돌 가수가 SNS에 올린 코멘트가 있었는데, 그는 방송 무대의 음향에 대해 일침을 놓으며 무작정 가수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하는 것만이 좋은 공연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처럼 방송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살아있는" 음악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 가치는 단지 노래만 라이브로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주도 실제 세션들이 라이브로 해야할 것이고, 음향 장치가 좋아야 할 것이며, 방송 상태가 원활하고 균일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집 텔레비젼의 사양이 최고급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것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라이브에 대한 가치판단적 강박은 전통적 음악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물론 공연장의 구조나 여타 조건들에 따라 음향은 늘 달라질테고, 그래서 같은 연주자라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한 연주의 녹음본이 다른 것보다 높게 평가되곤 한다. 애초에 최적의 음향으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그러한 감상의 조건들과 미적 가치가 K-POP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K-POP의 존재의 이유는 보여지는 것에 있고, 그것도 심지어 "예쁘고 멋있게" 보여지는 것에 있다. 매 공연마다 그 순간에 고유한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시각적 미를 희생해야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는 가수들과 그들의 (혹은 그들 자체로서의) 상품으로 돈을 버는 방송국이 계속해서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K-POP은 그 특성 상 수용자/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상품(이미지, 퍼포먼스)을 내놓게 되는데 수용자/소비자들이 K-POP 퍼포먼스로부터 원하는 것을 클래식 음악 감상에서와 같은 미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극도로 매체화된 시대와 문화에서 우리는 시각 이미지와 그에 따른 변화들을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에 대한 침해나 오염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요구가 전통적 음악 미학까지 운운해야 할 문제라면 퍼포먼스로서의 K-POP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술의 정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사안이 되겠지만, 사실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미적이지 않을 때가 많은데, K-POP은 그렇게나 많은 이들에게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데 말이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