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에 두 가지 사실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먼저, 좋아서 하는 밴드, 그들의 음악에 대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친구에게, 또 <보신 음악회, 더 워 The War>라는 제목에 끌려 콘서트를 보러 갔다. 노래를 찾아 들고, 밴드에 대한 사전 정보들을 파악했다면 좋았을까? (노래를 다시 듣고 있는 지금 생각은, “그렇다.”이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나는 이야기, 서사, 기승전결, 드라마, 이런 것에 집착(?)한다.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집착한다고 내 자신을 다소 비하해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비단 나만의 성향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사물들에서도 이야기를 찾고, 만들어 낸다. Heider와 Simmel의 유명한 실험은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이 실험에서 사람들은 원, 삼각형의 움직임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 움직임을 탈출이라고 해석함을 발견했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다웠고 때로는 유쾌했고, (나는 모든 노래를 처음 들었지만,) 조용히 따라 부르는 주변의 나직한 목소리와 가끔 터지는 웃음 소리들이 좋았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과 같은 곡 소개나, “젬베를 사려고 밥을 굶었잖아요.”같은 이미 공유된 이야기들은 그들에 대한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밴드의 멤버나 세션 소개가 공연 중반 이후에 치우친 것과 마이크 음량이 작아 가사나 대화가 잘 전달되지 않은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좋아서 하는 밴드(조준호(퍼커션, 우쿠렐레)와 안복진(아코디언, 건반), 손현(기타)), 상상 속의 그들은, 꽤 나이가 지긋하고(하지만 생각보다 모두 어리시고), 다른 일을 하면서 “좋아서” 밴드를 하는 뮤지션들이었지만(무지했다), 실제로는 전업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분들이었다. 누가 보컬인지, 혹은 리더인지 궁금했지만, 공연이 끝난 후에야, 그들은 독특한 협업 시스템을 가지고, 각자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신이 쓴 노래를 자기가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출처: “내가 첫 번째였으면 좋겠어” 뮤직 비디오 중) |
밴드를 처음보고, 노래를 처음 들은 초짜 관객은(손현님 표현: 새 거) 노래와 노래 사이를 연결하는 대화들, 이야기들에 관심을 돌리게 됐다. 보신 음악회의 주된 기획으로 보였던 “닭들의 역습”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아쉬웠다. 닭을 먹지 말자고 투쟁하던 그 분(닭 분장을 하고 나온, 그분 이름이 뭐였더라? 닭 대장이었던가)과, 더위를 이기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뮤지션들의 대화는 그 완성도가 아쉬웠다. 메리홀이 아니라 작은 클럽이었다면, 혹은 이 기획 자체를 시도하고 노래만 들려주는 구성이었다면 모를까, 콘서트의 일부분으로 끼워 넣은 이상, 더욱 완성도 있는 쇼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콘서트 시작 전, 자신의 보신 음식을 적어 내라고 했다. 이름과 좌석 번호, 전화번호까지 적어서. 그러나 이 게시판은 삼계탕을 써 넣은 한 관객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또 갑자기 우쿠렐레를 선물로 주는 응모판 이상으로는 쓰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관객들의 메모를 다양하게 활용했다면, 뮤지션들의 여름 나기 방법에 관객을 참여시키는 등, 무대와 객석이 보다 가깝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닭듥의 역습이라는 이야기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닭을 초빙한 밴드의 예상처럼 많은 사람이 삼계탕이나 치킨을 쓰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노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었다면, 노래에 대한 집중도도 더 높아졌을 것이며, 나 같은 관객에게도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유명한 그들의 팬들은. 라이브로 노래를 듣고, 웃고 감동하는 것으로도 더위를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거나 그들의 지난 날과 사건을 공유하지 못하는 관객까지 쉽게 팬으로 만들려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대화,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노래 안에도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들이 날아 오르며 저 멀리로 나아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모양도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으며, 가사로 쓰여지고 불려지는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가스비를 걱정하며 보일러를 돌리는 남자의 마음을 상상하고(“보일러야 돌아라”), 깜짝 깜짝 놀라며 설레는 여자의 발그레한 볼을 떠 올리며(“얼굴 빨개지는 아이”),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 그래서 노래 듣기가 즐거운 것 아닐까? “굿 바이 스타”의 스타가 뮤지션에게는 10만 킬로를 달리고 폐차하게 된 스타렉스였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지만, 앞으로 “굿바이 스타”를 들으며, 그런 존재를 가진 관객들은 자신만의 그 무엇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기가 막힌 연주나 소름 끼치게 잘 부르는 보컬을 넘어서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 그래서 때로는 울컥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되는 것. 그런 힘은 이야기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콘서트의 이야기가 더욱 탄탄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삼계탕이 아니어도, 그들의 노래를 모두 따라 부르지 못해도,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분명 <보신 음악회>는 좋은 기획인 것 같다. 5년째 이어오는 이 기획은 복날이면 그들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것 이상으로 객석에 앉은 관객도, 팬도, 뿐만 아니라 뮤지션 그들도 무더위를 이기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즐겁게 노래를 듣고 와서, 서사며, 실험 같은, 재미없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C는 내게 “또 머리로 들었구만.” 하고 퉁을 놨다. 마음으로 노래를 듣기에는, 좋아하는 밴드와 나, 우리가 보낸 시간은 너무 짧다. 시간을 붙잡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과(김중혁 <모든 게 노래>) 마음을 나누려면, 앞으로 더 긴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모든 노래를 찾아서 (유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내년에도 <보신 음악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길. 저도 따라 부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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