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4일 수요일

우리들의 <알리바이 연대기>

by 산책



연극이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고, 나아가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고, 또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관객들이 그것을 불편해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연극을 멀리하거나 싫어 하지 않을까 때때로 걱정한다. 연극이 정말 좋고, 연극 안에서 나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떼기 어렵다. 연극은 비싸니까, 어려우니까,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나는 극장에 주로 혼자 간다. 이런 것을 알리바이라고 해야 할까? 알리바이라고 할 만큼, 잘못인 걸까?

  <알리바이 연대기>는 나와 다른 공부를 하는, 다른 관심을 가진 10명과 관극했다. 대부분 관극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가, 작년에 여러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했더니 기대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소개한 나로서는 이 작품이 정말 좋은지, 모두가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 주위 사람들에게 재차 확인하게 되었고, 조금은 가슴을 졸이며 극장에 갔다. 2시간 30여분의 긴 공연 시간에, 시국이 시국인 만큼 마음을 언짢게 할지 모르는 내용 때문에 공연 중에도 때때로 마음이 불편했고, 공연이 끝나고는 이 작품에 대해서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설명과 변명을 하고 싶었고, 조금 그렇게 했다. 나의 걱정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린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게 들려주고, 보내준 그들의 감상을 최소한의 편집을 거쳐 함께 싣고자 한다.

  1998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193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2014년에서 끝난다. 그러나 무대 위에는 현재의 나(재엽)와 그 당시의 아버지 뿐 아니라, 그 과거를 회상하는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존재한다. 이 인물들은 무대 위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방 당시 어린 아이였던 아버지와, 그 시간을 회상하는 아버지, 그것을 다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재엽까지 우리는 동시에 세 가지 시간, 세 가지 시점을 만나게 된다. 지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버지에 의해 회상되면서 과거가 되고, 재엽에 의해 다시 전달되면서 과거 완료가 된다. 이렇게 겹겹히 쌓인 시간은 그들의 역사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대구에 살아 극중 지명들이 친근하며, 역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는 B는 이렇게 말했다.

인물에 대한 초점 전환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세대별로 이 작품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젋은층에게는 이전 세대들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그려보는 기회가, 노년층에게는 자신의 지난 세울, 커다란 꼭지들을 되짚어 보며 순간 순간 자신의 모습들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해방, 한국 전쟁, 4,19, 5,18, 1990년대까지 이어져 온 학생 운동은 나를 비롯한 젊은 이들에게는 지나간 과거, 글로 배운 과거이다. 부끄러운 과거도, 가슴 아픈 사건도 우리에게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분명 이 작품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옆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은 어렸을 때, 광화문 근처에 사셨고, 김재철이 다니는 거며, 시위 장면들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거리를 둘 수 없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보다 훨씬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고, 재엽의 아버지가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힘겹게 고백하는 자신의 알리바이 역시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이제껏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다소 냉소적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이 쉬이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알리바이에 대해 H는 죄를 지은 사람과 우리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만드는 것 같다고, 일부, 나쁜 사람들만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P는 아버지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알리바이 연대기임을 생각했고, 삶의 사실을 은폐하는 알리바이가 우리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P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버지의 고백이 알리바이인 것은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개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우리조차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또한 아버지의 연대기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사건들을 떠 올리게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생각했던 나의 알리바이들을 곱씹게 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라지 않은 K는 무대 위로 소환되는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역사의 거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선생님보다, 그 시대를 배워서 아는 우리들보다 멀리 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덕분에 그들의 감정과 이야기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 이야기에 선생님께서는 남명렬 배우가 유려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는 논평을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타는 자전거는 정말로 매끄럽고 우아하게 객석과 무대를 가로 질렀다. 이 자전거 장면은 K와 H에게는 더욱 특별한 것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객석 중간까지 들어 오는 배우를 보고 그들은 조금 놀랐고, 무대를 한층 가깝게 느꼈으며, 무엇보다 무대와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무척 희미하거나, 극단 뛰다의 <바후차라마타>처럼 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오는 파격적인(?) 공연들을 소개해주고 싶다. 이런 방식이 이제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연극은 아직 대중적인 예술이 아니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재엽의 아버지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여러번 되뇌었다. 이 땅에서는 뿌리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외국 책을 사 모으고, 아들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사람 많은 곳에 서라고 가르쳐 왔다. 우리는 이 의미심장한 충고도, 침묵으로 숨어버린 사람들도 비난할 수 없다. C가 이야기했듯이, 그들은 “다수”이며, 우리 역시 그 “다수”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사느냐”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고 말해준 P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어떻게”가 중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침묵해온 시간들은 애지중지 사랑했던 막내 아들에게 힘겹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 C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다는 외할아버지가 재엽의 아버지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로 홀로 상경해 대학을 다닌 75학번 내 아버지를 떠 올렸다. 아버지가 살아낸 그 시간은 어땠을까.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고백할까. 후에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고백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뒤늦은 후회도 소용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따라 자전거를 탄 재엽의 모습은 우리가 그 알라비아의 고리를 쉽게 끊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마지막 순간 관객을 바라보는 부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각자의 연대기를 되돌아 보라는 요청으로 느껴졌다. 극장을 나오면서 J는 이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건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알리바이 연대기는 재엽 부자의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극장을 나온 우리는 마음이 무거웠고,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미안했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마음에 남은 것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공동체적 경험이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났으며, 앞으로 조금은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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