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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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애버렛 밀래John Everett Millais, <오필리어>, 런던 테이트 미술관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에서 공연한 <정물화>(유미리 작, 성기웅 연출)에는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정물화를 그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무대 전면에는 하얀 액자틀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객들이 액자 속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대 뒷면에는 또다른 '프레임'--창틀--이 삼중, 사중으로 겹쳐져 있다.) 그런데 작품 속 대사들을 듣고 있자니 작가가 생각한 정물화는 위의 그림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유미리의 희곡은 오필리어를 언급하면서 시작한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서 나나코가 쓰는 글은 이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이 많고, 또한 극의 마지막 부분에 히가시 수녀가 나나코의 죽음을 전하는 대목에 등장하는 손에 꽃을 쥔 모습 또한 정확하게 이 그림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유미리의 <정물화>는 이 그림을 극으로 표현한 시도였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근데 이 그림이 정물화인가? 아니다. 그럼 풍경화일까? 모르겠다. 작품 수업 놀이에서 창밖을 보면서 정물화를 그리라고 했던 나츠코가 정물화와 풍경화를 헷갈려했던 것처럼, 이 그림 역시 풍경을 묘사한 듯 하지만 정물화 같은 느낌을 받게한다. 정물화를 영어로는 Still life, 독일어로는 Stilleben이라고 하는데, 17세기에 유행했던 정물화들은 대체로 '꽃과 죽은 생물'로 채워져 있다. 왜 그렇게 랍스터가 자주 등장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물 안에 있어야 할 가제가 식탁 위에 꽃과 함께 놓여진 것처럼, 물 밖에 있어야 할 오필리어가 꽃을 쥐고 물에 떠 있는 이 모습은 둘 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래서 소리없이 조용한(still) 생명체인 것이다. ㉦
Anne Vallayer Coster, <랍스터가 있는 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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