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키스 앤 크라이> -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by 김재영

영화는 ‘과거'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비춰준다. 영화 제작은 영화 상영 이전에 발생한다. 영화관 스크린 속 인물은 지금 내 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거 어느 시점에 이미 카메라 앞에서 움직였다. 나는 항상 카메라보다 늦게 영화를 보는 것이다. 설사 그 영화가 미래의 사건을 다룬 SF영화라 할지라도 그 이미지가  ‘과거’에 속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공연예술이 관객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함으로써 현재의 사건을 보여준다는 점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그리고 ‘상영’된) <키스 앤 크라이 (연출 : 자코 반 도마엘)>에서는, 카메라맨이 무대 위에서 찍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관객은 카메라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사진출처 : LG아트센터)

일반적인 영화 상영이 카메라의 녹화, 재생 기술을 이용하여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키스 앤 크라이>의 카메라는 피사체를 보기만 할 뿐, 본 것을 녹화한 후, 재생하지 않는다. 이는 곧, 공연이 매회 반복될 때마다 카메라맨이 매번 같은 움직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번째 씬에서 카메라맨이 트랙 인(track in)하여 피사체에 접근했다가 좌상향으로 움직이고, 다시 우하향한 후, 트랙 아웃(track out)하여 피사체에 멀어졌다면, 카메라맨은 매 공연의 첫번째 씬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해야 한다. 카메라의 녹화, 재생 기술이 제거됨으로써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화 이미지는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며, 관객은 스크린의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카메라맨의 디테일한 동작을 공연의 일부로서 바라보게 된다. 이는 비단 카메라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존재하는 영화 스탭들, 이를테면 조명 스탭, 콘솔 컨트롤러, 연출가와 같은 이들의 영화 찍는 행위 자체가 공연의 일부로서 관객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관객의 눈은, 스크린 상의 영화 이미지와 무대 위  ‘수행자’들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게 된다. 무용수들의 손가락 춤은 카메라에 의해 매개되어 스크린 상에 나타나는 동시에, 미디어의 도움 없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무대 위 동작으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소품 담당 스탭이 물 속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동작은 무대 위의 행위로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동시에, 카메라에 포착되어 스크린에 나타난다. (물론 이 경우에, 소품 담당 스탭의 움직임은 카메라 프레임 바깥으로 숨어버리고, 스크린 상에는 화면을 가득 메운 물 속에 잉크 방울이 떨어져 서서히 섞이는 장면만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무대 위 사물들 역시 공연과 영화의 일부로서 동시에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그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나레이션에 맞추어 장난감 기차가 무대 위에 미리 세팅된 트랙 위를 따라 움직이고, 장난감 기차의 측면에 부착된 초소형 카메라는 트랙을 따라 배치된 여러 오브제들, 조그마한 나무, 가로등, 도로, 동물 등의 모형을 포착하여 스크린 상에 투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카메라 프레임 바깥에 존재함으로써 스크린 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스탭들이 이제 자신들이 찍고 있는 영화 이미지와 동일한 무대 공간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다. 영화 이론가인 장 루이 보드리가 지적하듯이, 카메라와 영사기라는 기계 장치의 작동 때문에 관객들은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 있는 소재(피사체)로부터 완성된 영화 작품으로의 변형을 볼 수 없다. 관객은 영화관에서 완성된 작품을 볼 뿐이며, 촬영 단계에서의 화면분할과 후반 작업 단계에서의 편집 과정을,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소재(“객관적 실재”)가 완성 작품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진행 과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에서 관객은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존재하는 재료들이 어떤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겨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으며, 비록 이 경우에 편집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적어도 촬영 단계에서 스탭들이 조명과 소품,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의미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영화의 경우와 달리, <키스 앤 크라이>에서 카메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관점(피사체를 보는 위치)조차도 독점적으로 점유하지 못한다. 관객은 언제라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무대 위 스탭들과 무용수들, 오브제들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환영적인 이미지로부터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제 카메라의 시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무대 위 움직임과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출처 : LG아트센터)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관객들이 스크린과 무대 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더라도, 스크린을 통하지 않고서, 즉 직접 무대 위 공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연이(무용수들의 춤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무용수들의 손가락 춤은 조명, 특수효과와 더불어 스크린 상에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그들의 손가락은 매우 작기 때문에 관객이 스크린을 통하지 않고, 직접 그들의 손가락 움직임을 보기에는 불편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LG아트센터의 2층과 3층에 앉은 관객이 무용수의 손가락 움직임을 세세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공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야만 한다. 관객은 영화 이미지가 생산되는 ‘과정’ 자체에 대해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공연 자체의 내용과 무용수의 미세한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이는 스크린에 표현되는 이미지에 매혹되어 공연을 만족스럽게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움직임들을 영화가 아닌 공연으로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여전히 피사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상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관객이라도 무용수의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관절의 떨림, 힘을 줄 때마다 변화하는 손등의 핏줄 등을 카메라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무용수의 손가락은 관객을 향해서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카메라 프레임에 갇혀서 움직이는 것이다. 카메라맨이 매 공연마다 같은 카메라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듯이, 무용수의 손가락 역시,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혹은 안으로 혹은 바깥으로 움직이며, 이는 매 공연마다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수는 카메라가 포착하는 사각틀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용수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마지막에 가서야 없어진다. 영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나게 된 남녀의 손가락으로부터 카메라가 트랙 아웃하면서 배우의 팔과 가슴, 몸통 전체가 드러나며, 별안간 영화 이미지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제 카메라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두 남녀 무용수는 더 이상 카메라의 화면을 의식하지 않고, 관객석 쪽으로 시선을 두면서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카메라 화면 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무용수의 움직임이 그 프레임을 깨고 나와 관객 앞에 섰을 때, 나의 시선이 꽁꽁 묶여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대 위에 존재하고 있던 배우들이 마지막 순간 영상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연극 <홍당무>와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http://www.drama-in.kr/2014/02/carotte.html) 그리고 무용수들 역시 자유로워 보인다. 작고 미세한 세계로 한정되었던 사각형의 틀이 무한정 줌 아웃(zoom out)되면서 공연장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틀로 바뀌었다고 할까. 아주 잠깐의 장면이지만, 작고 세밀한 세계를 포착하여 스크린 상에 확대시켜 놓았던 카메라가, 이제 거대한 공연장 전체 뒤로 물러나 무대 위에 작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세워 놓았다는 점에서 연출가의 영화와 공연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난다. 혹여나 이 공연이 카메라의 시선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을 관객조차도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