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뫄
얼마 전 리쌍의 래퍼이자 작사가인 개리의 첫 솔로 앨범이 나왔다. 어려웠던 시절을 “벚꽃처럼 잠시 피고 졌다”고 추억하고 (‘회상'), 연인에게 “너에게 난 사랑이자 때로는 아픈 가시”라고 고백하던 (‘너에게 배운다’) 리쌍의 노래를 떠올리며, 나는 다른 힙합 음악보다 그의 가사와 랩 방식에 특별히 더 서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고, 방송을 통해 본 개리의 이미지는 친근한 외모, 세련된 유머감각과 적절한 겸손함, 즉 이 시대 ‘훈남’의 미덕을 모두 가진 남자의 그것이었다. 개리의 음악와 뮤직비디오를 전혀 듣거나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곽정은 기자(https://twitter.com/ohitwaslove)가 앨범의 타이틀곡인 '조금 이따 샤워해'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미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평한 코멘트가 소위 ‘디스’라고 여겨지며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뉴스를 먼저 접했다. 곽정은 기자는 코스모폴리탄의 피쳐디렉터, 섹스 칼럼니스트이자 현재 가장 핫한 연애, 성 관련 토크쇼인 <마녀사냥>(JTBC)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며, 젊은 여성들의 성 관련 전문가로도 불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미학’을 운운하며 개리의 뮤직비디오를 비판했다면, 분명 여성의 입장에서 불편하다는 것을 예술의 문제로 돌려서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개리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거부감을 느꼈을 여성이 곽정은 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모든 남성들이 이 뮤비를 반겼을까? 이게 단지 이 뮤직비디오의 선정성 때문일까? 리쌍의 이전 뮤비 역시 19금 판정을 받은 바 있는데다가(‘TV를 껐네’), 그렇다면 UV의 '설마 아닐거야' 뮤직비디오(http://www.youtube.com/watch?v=1xKy_6QUibQ)의 선정성은 어떤가. 가사마저 대놓고 성적인 UV의 그 뮤직비디오가 비록 방송사에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을지언정 대중에게는 큰 거부감 없이 (혹은 상당한 호응과 함께) 수용되었다는 사실에는 단지 성적인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해학성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통 ‘키치’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캠프’인 예술 양식 - 수잔 손택에 따르면 키치가 순진한 캠프, 즉 그것이 세련되지 않다는 사실에 무지한 상태라면, 의도적 캠프는 키치의 전복적인 형식으로서 키치한 것에 대한 개념들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미학이다 - 으로 '설마 아닐거야'의 뮤직비디오가 이해될 여지가 있다면, '조금 이따 샤워해'의 뮤직비디오는 심지어 ‘세련되지 못한’ 것마저 오히려 그 반대로 꽤나 고차원적인 예술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키치의 기준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하지만 '조금 이따 샤워해' 뮤직비디오가 범한 가장 큰 오류는 Benny Benassi의 'Satisfaction' 뮤직비디오(http://youtu.be/V5bYDhZBFLA)를 패러디하거나 그것에 대한 오마주로서 연출한 것도 아니라 그저 일부 베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원작을 비틀고 조롱함으로써 희화화하는 것인 패러디나 원작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방식인 오마주, 그 어느 쪽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답을 베끼는 학생들이 종종 그러듯이, 개리의 뮤직비디오는 'Satisfaction' 뮤직비디오가 가진 매력의 핵심을 놓치고 말았다. 두 작품 모두에서 몸을 노출한 섹시한 여성들이 연장을 사용하는 모습, 혹은 노동하는 여성의 신체가 클로즈업 되고 반복적으로 비춰지는 등 감각적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Satisfaction'에서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몸을 스스로 소유하고 소비하는 주체들로 보인다면, '조금 이따 샤워해'에서의 여성들은 소비되고 대상화되는 성으로서의 몸, 즉 철저히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몸만을 가진다. 전자에서 아주 강하게 제시했던 여성성을 후자에서는 그 반대로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더군다나 전자에서는 여자 모델들의 아무리 수위 높은 노출이라도 그 시각적 자극이 Benny Benassi의 리듬과 어우러져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이어지지만, 후자의 비주얼은 개리의 노래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뮤직비디오를 본 후 개리의 노래를 ‘듣기 위해’ 다시 음원을 재생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뮤직비디오가 그것의 목적 혹은 기능에 합당한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의구심은 개리의 뮤직비디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뮤직비디오가 음악에 대한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예술형식으로 시작해서 1980년대 MTV의 설립 이후 점차 독립적인 예술장르로 발전해왔다면, 현대의 뮤직비디오는 큰 부분에 있어서 상업적인 목적, 즉 마케팅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라디오보다는 비디오의 시대인 지금, 뮤직비디오는 대중이 음악을 더 풍부하게 감상하고 아티스트의 음악외적인 감각이나 표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개리의 이 뮤직비디오는 그저 자극적이며 사람들과 언론의 이목을 끌기 위한 노이즈마케팅 수단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미 음악으로도 인정받았고 예능방송으로도 대중적 인지도가 충분한 개리가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다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현상태가 안타깝고, 만약 정말 이 뮤직비디오가 순수하게 개리의 예술적 창의성의 결과라면, 그건 또 그것대로 참 안타까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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