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무더운 여름이다. 여름은 사람들에게 “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 같다. 세 번의 복날에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라도 몸 보신을 해야 할 것 같고, 탄탄하고, 날씬한 몸을 위해 여름이 오기 전 미리 준비했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갖게 만든다. 7월 초부터 “늦었지만 이제라도” 날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한 팁을 알려주는 각종 동영상이 SNS를 타고 나에게까지 왔다. 정말 7일만 하면, 영상 속의 저 사람 같은 몸을 가질 수 있는 건지 궁금하고, 준비되지 않은(?) 내 몸을 괜히 내려다 보게 되고, “7일만에”, “하루 10분으로” 라는 제목을 믿어 보고 싶은 그런 마음도 들었다.아름다운 몸을 찾아서
하루 10분으로 배를 쏙 들어가게 해 준다는 영상을 켜고 따라 해 볼 주변머리는 없지만, ‘아름다운 몸’을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런데 “병신”을 보러 가다니. 마지막 공연을 하루 남기고 이 작품을 서둘러 보러 가게 된 것은 사실 포스터 때문이다. 아빠가 로봇으로 변신한다니! 근데 왜 ‘변신3단 로봇’이 아니고, ‘병신3단 로봇’인 걸까. 그리고 대체 ‘SF활극’을 소극장에서 어떻게 한다는 건가.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작품에서 변신하는 병신, 배우들이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결투하는 활극, 레이저와 로봇이 등장하는 SF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배우의 탄탄하고 아름다움 몸까지!
변신, 상상해라.
“연극적 상상은 영화적 상상보다 매력적입니다. 연극은 관객과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연극에서 SF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는 바다입니다.”라고 하면, 무대는 바다가 되고, 흰 종이를 뿌려주며 “함박눈이 내립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눈 내리는 바닷가가 됩니다.” 연출의 말 중에서.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포그맨(그렇지만 여자,)이 나와 스스로를 ‘노출 형 무대진행요원’이라 밝히면서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을 모두 상상하라고, 상상하는 관객만이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관객들은 와락 웃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심각하게(?) 그 대사를 받아 적었다. 텅 빈 무대를 보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말로 왕을 속인 재단사를 떠 올리면서.
포그맨은 장이 바뀔 때마다 장의 제목과 짧은 설명을 곁들여 주었고, 공상철의 변신 과정을 도와주면서 관객들에게 “상상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과 관객들이 만들어 내야 하는 이미지의 간극이 컸기 때문에 포그맨의 이 대사는 관객들을 계속 웃게 했지만, 이 대사가 반복되기 시작할 때 나는 조금 피로감을 느꼈다. ‘자꾸 말을 거니까, 상상할 시간이 부족하잖아.’라고 투덜거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또, 다 말해주지 않아도 좋을 것들, 관객들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들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과도한 친절이었다. 멋진 변신 로봇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두 개의 플래쉬, “위웅 위웅” 입으로 낸 소리로 진행되는 로봇 변신 과정에 크게 웃어줄 만큼 관객들은 준비되어 있는데, 포그맨은 그 자신이 상철에게 “기니까 짧게”하라던 것처럼 너무 말이 많았다. 두 번째였던가, 세 번째 변신에 포그맨이 나와 그냥 고개만 끄덕였을 때 다시 관객이 크게 웃었던 것을 생각하면, 직접적인 설명 또는 안내를 줄이고, 관객에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연출의 말처럼 진짜 바다를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은 이곳이 바다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훈련된 관객만이 그런 것일까?). 그러나 “여기는 바다”라고 직접 말하기 보다, 정말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연극일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야근펀치며, 연봉삭감 킥, 사채 부메랑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보이는 것 이상을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고, 또 웃게 만드는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병신, 세상살이는 쉽지 않구나.
단지 재미있었다는 말로 이 작품을 모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으며, 나 역시 조금 울컥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작품에 대한 말을 아끼고 싶다. <병신3단로봇>이 8월 1일부터 한 달간 재 공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 가서 웃고, 크게 박수 쳐 주었으면 좋겠다.상철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3단 변신을 했다. 땀은 상의를 적시고, 한 바퀴 뱅그르르 돌 때면 객석으로 날아가는 땀이 조명을 받아 빛났다. 그렇게 애를 써서 3단 변신에 성공하고 아들을 구해냈지만, “앞으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3단 변신을 마친 후 그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더 처참하다. 상철은 계속해서 땀을 흘리고, 쓰러지고 눈이 벌개졌다. 이야기 속 아버지가 마주하는 어려움은 무대 위에서 배우가 흘리는 끝없는 땀으로 보여졌다. 앞섶을 모두 적신 땀이 아버지의 고생을, 또 배우의 노력을 모두 보여주었다. 내가 손바닥이 아프도록 친 박수는 아버지에게, 또 배우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정말 애썼다고, 어쩌면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은 그런 박수였다. 대체 몇 단 변신을 해야,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걸까.
덧붙임들
포그맨의 설명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과 마찬가지로, 조화로 덮인 꽃밭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조금 힌트만 준다면, 나는(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꽃밭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결말 부분의 이야기는 조금 더 탄탄해 졌으면 좋겠다. 왜, 10억인지, 왜 나비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이런 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이영훈의 『체인지킹의 후예』를 추천한다. 사실 이 책은 누군가 이 책의 제목을 치킨의 후예로 잘못 읽고 당장 사야겠다고 남긴 트윗을 보고 깔깔 웃다가 읽게 되었다. <병신3단로봇>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두 작품 모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변신이라고 외쳐!”
그렇지만 변신을 할 수 있을지, 변신을 해서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두 작품 모두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체인지 킹』을 읽고 위안을 얻었던 작가의 말을 다시 상기해 본다.
"최선이라고, 말할 순 없다. 최선 같은 것은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쓰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다. 무척 즐거웠지만, 때때로 겁을 먹었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쉬지 않고 썼다. 이 계절의 내 자랑거리는 그런 것이다. 뛰거나, 걷거나, 기어, 한 방향으로 왔다는 것."
온 힘을 다해 100분의 공연을 마친 배우의 벌개진 눈이 마음에 남았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앞에 서 있다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온 배우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사인을 해 달라고 할 뻔 했다. 이 작품을 다시 보러 간다면, 나는 쑥스러움을 이기고 사인을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