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재영
한국영상자료원은 ‘최은희 특별전(2013년 6월 13일 ~ 30일, 시네마테크 KOFA 1관)’을 통해 영화배우 최은희의 영화 25편을 상영하였다. 그녀는 1947년 <새로운 맹서>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로맨스 빠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1978년 북한으로 납치되어 남편인 영화감독 신상옥과 북한에서 <불가사리>, <소금> 등의 영화를 제작한 후, 198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녀의 굴곡 많은 삶의 흔적은, 마치 한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영화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과 남북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시대까지 격변하는 시대에서 충돌하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그 속에서 반목과 화해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62년 개봉하여 제2회 대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열녀문(감독 신상옥)> 역시 과부의 정절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여성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통해 여성의 행복한 삶은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도시에서부터 농촌으로 빠르게 개화가 진행되고 있던 1920년 무렵, 어린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평생 과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양반집 아씨(최은희 역)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아씨의 시할머니(한은진 역)는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재가하지 않고 절개를 지켜 나라로부터 열녀문을 하사받는다. 시할머니는 아씨에게 ‘신불사이군 여불사이부(臣不事二君 女不事二夫) 즉, 신하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고,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유교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며, 외부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릴 때마다 허벅지를 은장도로 찌르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가르치는 전통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이 집안의 머슴인 성칠(신영균 역)은 아씨를 연모하고 있는데, 그는 여성이 자신의 사랑과 욕망에 충실해야 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근대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결국 아씨는 성칠과의 동침으로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양반의 체면을 중시하는 시아버지의 반대에 막혀 재가하지 못하고 성칠과 아이를 다른 마을로 떠나보낸다.
이 영화에서 아씨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속하고, 대상화한다. 시할머니와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등 양반 가문의 어른들은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아씨의 고독한 인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녀의 고통과 희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마을의 남성들은 그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새참을 이고 논을 걸어가는 아씨에게 홀아비인 남성이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알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지’라는 노래를 읊조리며 수작을 부린다. 아씨가 새참을 성칠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숲길에서 다른 남성은 아씨를 강간하려고 하다가 성칠에게 맞고 도망간다. 시동생은 비교적 아씨를 잘 따르고 위하지만, 상사병에 걸린 소년처럼 형수를 사모하는데, 형수가 성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배신감에 그녀를 괴롭히고, 모욕하려고 든다. 성칠은 그녀를 가장 아끼고 그녀의 삶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이지만, 그 역시 남성 중심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기나긴 가뭄으로 논이 바짝바짝 말라가던 어느 여름날, 때마침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는 환희에 젖은 채 아씨를 부둥켜 안게 되고, 이를 거부하며 뿌리치는 아씨를 쫓아가 반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는다.
젊은 과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러한 시선은 신상옥 감독의 독특한 화면구성에 의해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로(low)앵글과 경사앵글로 주변 인물들을 담아내는데, 로앵글을 사용한 화면에서 관객은 주변 인물들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되어 아씨에 비해 크고, 권력을 가진 인물들로 인식하며, 아씨가 그들에 의해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경사앵글을 통해 인물들이 사선으로 서 있는 화면구도가 자주 표현되는데, 주변 인물들을 사선으로 배치할 때에는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이 다양하게 중첩되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아씨를 사선으로 배치할 때에는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위태로운 처지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화면 구도를 통해 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가치관의 대립과 욕망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그 속에서 대상화되고 희생당하는 아씨의 고통스러운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영화는 아씨의 희생적인 삶의 모습을 비추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더 밀고 나아가, 혈육의 정을 끊지 못하는 아씨의 어머니로서의 모습과,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사이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칠과 아이를 떠나보낸 후, 시동생은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시아버지는 시동생의 탈선에 분노하다가 홧병으로 세상을 하직한다. 아씨는 거동이 불편한 시할머니를 모시고 머리가 하얗게 샐 때까지 몰락한 양반 가문을 지탱하는데, 시할머니의 온갖 투정과 괄시에도 굴하지 않고 집안을 꾸려 나가는 아씨의 모습은, 가세가 기우는 것도 모른 채 주색잡기에 넋이 팔린 시동생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시동생의 노름빚으로 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고, 아씨는 지게에 시할머니를 태우고 마을 아래 초가집으로 쓸쓸히 떠난다. 어느 날, 초가집에 찾아온 청년이 김진사댁 며느리를 찾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 아씨는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눈치 채지만, 아들을 떠나보낸 죄책감과 끝까지 양반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김진사댁 며느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청년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지만, 그 때 병상에 누워있던 시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기어 나와 청년에게 아씨가 바로 김진사댁 며느리이자 당신의 어머니임을 알려주고, 모자는 극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시할머니의 행동 변화를 통해 전통적 가치관이 근대적 가치관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원작인 황순원의 소설 <과부>가, 어머니가 끝내 자신의 아들을 거부하고 혈육의 정을 끊음으로써 과부는 지조와 절개를 지켜야 하고, 과부의 부정한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반면, 이 영화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을 한평생 고수하던 시할머니가 직접 아씨와 아들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개인의 행복한 삶이 가문의 체면과 유교적 질서에 우선한다는 근대적 가치관을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영화 속에서 아씨의 ‘피’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아씨의 ‘피’는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죽어가는 어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무명지를 잘라 흐르는 피를 남편에게 먹일 때의 ‘피’로서 지아비를 향한 헌신을 드러내는 전통적 가치관에서의 아녀자의 희생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성칠과의 관계에서 낳은 자식을 의미하는, 혈육으로서의 ‘피’의 이미지인데, 이는 유교적 가치관으로부터의 일탈과 새로운 생명, 새로운 가치관의 잉태를 의미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시할머니가 청년에게 아씨가 어머니임을 알려준 후, 그는 아씨의 잘린 무명지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어머니임을 확신하게 되는데, 이 때 혈육으로서의 ‘피’가 아씨의 희생으로서의 ‘피’를 확인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전통과 근대 두 세계 사이의 화해와 조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열녀문>은 독특한 화면구도와 ‘피’의 이미지를 통해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는 삶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덧붙여 이 영화는 200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계에 흩어져있는 필름들을 모아 디지털 영화로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자료에 따르면 1919년부터 1969년까지 발표된 총 2097편의 한국영화 중 약 30% 정도만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영화들의 복원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 당시 영화들에 대한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의 이해와 독특한 영화기법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논의가 이뤄질 수 있길 희망한다.